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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 찾아가는 문화공연 양산동 편
오산시 찾아가는 문화공연 양산동 편
우레와같은 박수와 함성, 몸이 들썩들썩~ 비와함께 '펀니밴드'의 공연은 더욱 무르익어가고 앵콜을 외치는 주민들의 함성!바로 1시간전 이 곳 양산동의 분위기였습니다.
우려햇던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지역 통장님들의 홍보 덕일까욧?^^
우산들고 꿋꿋히 자리를 지키며 공연을 즐기는 삼삼오오 가족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입니다.
주말도 반납하고 시민들을위해 애써 주시는 관계자님들! 덕분에 빗소리와 함께 금관 악기의 선율을 감상하며 행복한 토요일 밤 되었네요~
역시 문화 활동도 앞장서는 교육도시 오산!입니다.
다음주 토요일 25일(오후 7:30분)에는 고인돌공원에서 '전통예술단호연' (모듬북,비보이, 전통악기,사자굿판 등) 공연이 계획되어 있으니 가족과 함께 즐거운 토요일 보내시면 좋을꺼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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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 양산동 늘푸른오스카빌 '삼계탕데이'
오산시 양산동 늘푸른오스카빌 '삼계탕데이'
올해로 4회째 맞이하는 늘푸른 삼계탕데이가 입소문이 났는지 작년보다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로 한 여름 더위를 잊은채 봉사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한그릇씩 뚝딱 맛나게 드신 어르신들과 주민들이 너무 잘 먹었다며 감사 인사를 아끼지 않으시네요~
봉사하시는 양산동 늘푸른오스카빌 부녀회원님들 이 한 마디에 힘이나셔서 맛있게 드셔주시니 오히려 감사하다며 즐거워하셨습니다.^^
양산동 늘푸른오스카빌 부녀회주체 삼계탕 데이는 올해도 관리소 직원 및 경비아저씨, 통장 및 동대표들과 손 발을 척척 맞추며 뜻깊은 행사를 잘~ 마쳤습니다.
양산동 늘푸른오스카빌 주민 여러분~ 올 여름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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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_진짜 길 위로 나가다(수원화성)
<교실을 벗어나 진짜 길 위로 나선 인문학 강의>
7월 4일, 무더운 날씨에도 많은 수강자와 가족들이 수원화성과 융건릉 탐방을 위해 모였습니다.
가족들과 다함께 나들이 가는 기분으로
화성 열차도 타고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걸으며 도착한 곳은 수원화성 박물관이었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박물관의 해설사의 열띤 해설을 들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은 그 당시 한,중,일의 최고 기술을 모아서 건축하였고 그 기록을 자세하게 남겨놓은 덕분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살아남은 수원화성 성벽의 포탄흔이 그 날의 상처를 보여주지만, 그 역시 역사의 기록이기에 또한 소중한 역사일테지요.
<도서관 선생님들 대거 찍혔네요... ^^>
그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융건릉
추존장조(사도세자)의 릉인 융릉과 정조의 릉인 건릉이 있는 곳이지요.
원래의 묘는 경기도 양주시 배봉산 기슭에 수은묘로 있었으나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추숭한 후 영우원으로 높였습니다. 후에 묘지를 현 위치로 이장하고 현륭원이라 명명하였습니다. 1899년 고종이 왕계 혈통상 고조부인 장헌세자를 장조초 추숭하면서 융릉으로 격상시켰지요.
<추존장조의 융릉>
홍살문의 살은 홀수이며 융릉은 11개의 살이 있습니다.
이곳 저곳 둘러보는 탐방객들.
하늘은 푸르고
꽃은 이쁘고
나무 그늘은 가슴 깊이 스며드는 좋은 곳.
갈 때마다 다음에 꼭 와야지 마음먹게 되는 융건릉이네요.
앞으로의 강의와 탐방도 기대되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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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_조선 후기의 실학과 과학사상
7월 3일에 진행된 길위의 인문학 「조선 후기의 실학과 과학사상」강의 소식을 전합니다.
정성희(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 선생님은 조선후기 실학의 성립과 전개, 실학 시대의 과학 문화로 나누어 수업을 하셨어요.
"실학"이라는 용어가 지금은 우리 생활에 깊숙히 들어와있으며 생소한 단어가 아니지만, 처음 등장했을 때는 무척이나 새롭고 개혁적인 학풍이었다고 합니다. 실학의 등장은 바로 근대 탄생의 맹아기로 볼 수도 있고요. (실학이라는 단어는 20세기 이후에 명명)
실학이 태동하는 시기인 18세기-19세기는 세계사적으로도 서양이 동양으로 밀려오는 서세동점의 전환기였고, 국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국토가 황폐화 된 시기였지요. 대내외적 어려움을 극복할 새로운 이념이 필요한 시기였기도 하고요. 이 때 등장한 실학은 백성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학문에 반성하는 일환으로 "실용"을 중시하는 경향성을 띠고 있습니다.
인조의 심전도 굴욕이후 청에 굴복하였으나 문화적으로는 그들을 오랑캐로 여겨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의식이 팽배했었기에 그들은 오랑캐가 아니며 오히려 훌륭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워야한다는 담론이 진보적 지식인 사이에서 흘러나온 것이지요.
우리의 의식은 실학=정약용의 도식이 일반적인데요.
강의를 듣다보니 국사 시간에 덮어놓고 외웠던 경세치용파, 이용후생파, 실사구시파가 등장하더군요...^^;;
큰 테두리에서 보면 모두 실학파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세 부류로 나누는 것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약용은 경세치용파로 농업을 중시하여 중농학파라고도 합니다. 성호 이익, 안정복, 이벽,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등이 경세치용파에 속합니다.
이용후생하는 상업을 중시하여 중상학파라고도 하고, 북학파라고도 합니다.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홍대용 등이 이 무리에 속하지요.
마지막으로 실사구시파는 문헌을 통해 고증한 것을 받아들이는 고증학파라고도 하고, 대표적 인물로는 김정희가 있습니다.
<실학박물관에서 복원하여 남양주 봉선사에 기증한 곤여만국전도 병풍, 남양주 시 카페에서 발췌>
"실학은 본래 관념적인 학문을 지양하고 일상생활에 유용한 학문을 지향하려고 했기 때문에 자기 나라에 대한 탐구, 즉 역사, 지리, 언어, 정치, 경제 및 문화 등에 관한 연구로 발전"(강의안 요약)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도며 천문학이 먼저 들어왔고요. 영조때 만들어진 <신법천문도>나 마테오리치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는 세계를 바라보는 의식에 많은 변화를 주었습니다. 지구라는 말도 곤여만국전도가 전해지면서 생겨났다고 하네요.
사상과 학문이 그것을 공부하는 한 무리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변혁하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귀한 강의였습니다.
7월 17일(금) 10-12시는 한국의 산성과 독산성이라는 제목으로 김기섭 한성백제박물관 전시기획 과장의 강의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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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_한국전쟁과 유엔군초전비
한국전쟁 발발 65주년을 하루 앞둔 6월 24일 수요일, 꿈두레도서관에서는 길위의 인문학_ 한국전쟁과 초전비 강연이 있었습니다. 군사편찬연구소의 전쟁사부장인 조성훈선생님께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몇 년 전, 한국전쟁을 남한에서 선제공격한 것으로 아는 아이들이 많다는 뉴스가 이슈가 되었었죠?
그 뒤 다시 조사를 하니 "남침", "북침"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요.
"남침"은 남쪽이 공격했다는 뜻이 아니라, 북이 남을 공격했다는 뜻이고
"북침"은 반대로 남이 북을 침략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남침"이 맞는 건데, 아이들은 "북이 공격을 했으니까 북침"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설문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된 강의는 한국전쟁을 철저히 준비하는 한 편, 스탈린과 마오쩌동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북한으로부터 시작하여 유엔군의 참전 계기와 오산에서의 첫 전투까지 이어졌습니다.
<꿈두레도서관 제공사진>
1953년 7월 27일 종전이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군인으로 사망한 사람보다 민간인이 더 많음)이 목숨을 잃었고 가족과 헤어지며 국토는 분단이 되어서 지금에 이르렀지요. 그 상흔은 아직도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고요.
서울까지 3일 걸린 북한의 기세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면,
유엔이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하면 우리는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한국전쟁 발발 65주년, 휴전 62주년이 되었으나 지금도 우리 한반도는 전쟁의 위기가 남아있습니다.
우리 한반도에도 평화가 찾아오길
우리의 젊은이들이 더 이상 총칼을 들고 서로를 겨누지 않는 그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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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문화활동 덕분에 주말이 풍성합니다.
2015 찾아가는 문화활동
가족과 함께하는 공연 타악 퍼포먼스 맨투맨~~
6월 한달동안은 몹쓸 메르스로 많이 우울했는데요.
7월달에는 아직까지 큰소식(?)이 없어 천만다행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중입니다.
안 그래도 우울한터에 저희집이랑 가까운 문화공연이 있다해서 가족들과 손잡고 얼른 달려갔답니다.
이미 소문이 났는지 많은사람들이 모여계십니다.
매주 주말저녁에는 고인돌 공원과 맑음터 공원에서 다양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기에
저희들은 그저 하하호호 웃음과 박수와 함께 열렬히 환호합니다.
타악기로 두둥두둥하며, 토요일 밤을 뜨거운 열기로 시작합니다.한 분이 나오셔서 박수도 유도하고, 냄비가 타악기가 되어 어린이들도 무대서 동참도 해보고,
선물도 받고, 평범할 뻔했던 토요일 밤은 찾아가는 문화활동 덕분에 행복합니다.
이번에는 신명나는 사물놀이로 한판 신나게 놀아보고,
어르신들은 한두분이 일어나셔서 어깨를 들썩들썩~~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라는 문구가 새삼스러운게 아니듯.
돗자리에 어깨를 서로 맞대고 아직 어린 아기들은 아빠나 엄마의 무릎에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는데 보기에도 가족의 사랑이 몽글몽글 피어납니다.
우리 민요에 고유의 춤이 아닌 힙합을 보여주는데
어울리지 않을줄 알았는데 의외로 비트있는 춤동작과 민요가락이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끝날때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며 환호를 보내주시는 오산시민들 문화의식 수준이 짱입니다.
한시간의 뜨거운 공연은 시민들의 뜨거운 박수소리로 아쉽게 끝이났지만,
다음주에도 계획되어 있다는 사회자의 말씀에 꼼꼼히 장소와 일시를 보고계십니다.
정말 바람직한 모습들이시죠???
우리가 늘 하는말은 '아휴 바쁘다 왜 이렇게 바뻐'입니다. 우리는 늘 지쳐있고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생각은 늘 다음으로 미루는데요. 주말만큼은 잠시 피곤함은 내려놓고 우리를 위해서 온전히 생각하면서...
아래 사진을 참조하시어 좋은공연 놓치지말고 주말을 함께 즐겨보아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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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 안내
정부 3.0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
2015년 6월 30일부터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로 상속재산 확인이 가능합니다.
과거 사망신고 시 재산 확인을 위해 개별 기관을 일일이 방문해야 했었지만 이젠 서비스를 통해 금융재산, 토지, 자동차, 국민연금 등 전체적인 상속 재산을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인데요~
사망신고와 동시에 상속재산조회를 신청하면 된다고 하네요.
또한 신청인은 민법에 의거 상속인과 상속대리인만 해당이 되며 토지, 자동차, 지방세는 7일 이내 금융, 국세, 국민연금에 대한 정보는 20일 이내 홈페이지 및 우편으로 결과 확인이 가능합니다.
안심 상속 원스톱 서비스
■ 처리기한 : 지방세, 자동차, 토지조회(7일이내), 금융, 국세, 국민연금조회(20일이내)
※ 유의사항
○ 신청자의 메일, 휴대폰 번호가 바르게 작성되었는지 확인해주십시오
- 메일, 휴대폰 번호는 금강원 홈페이지 접속 결과확인시 본인인증수단이 됩니다.
○ 금감원 접수시 사망자의 해당계좌가 거래정지 되므로 입출금에 제한을 받을수 있습니다.
○ 교부한 접수증은 신청정보 확인, 추후 은행개별 방문 조회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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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인문학_꿈두레에서 만나다
꿈두레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길 위의 인문학이 오늘로 세 번째 시간입니다.
수강신청을 하고 일이 생겨서 두 번은 결석하고 오늘에야 참석을 했지요.
아, 메르스 때문에 2주 간 도서관의 모든 문화강좌와 행사가 취소되었기에 개강하고 한 달여만에 간 셈이네요.
오늘 강의는 정해득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의 정조의 화성건설과 오산이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정해득교수는 수원출신으로 초~대학까지를 수원과 수원 인근에서 다닌, 그야말로 이 지역색을 품고 있는 분 같네요.
수원 = 화성 = 정조 = 효의 연결고리가 생기게 된 배경을 위주로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유교사상의 중심인 충, 효를 생각해보면 정조의 현륭원을 세운 이야기, 화성을 조성한 이야기가 이해될 수 있는데요. 어떤 이유에서였건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고 세자임에도 뒤주에서 굶어죽어야했던 아버지에게 효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던 아들 정조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것이지요.
임진왜란 때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던 것이나 인조의 삼전도 굴욕으로 왕의 권위, 왕실의 권위는 땅 위에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숙종이 그 권위를 제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영조는 그것을 지키고 굳건하게 하였고요. 이것을 지켜나가야하는 상황에서 아들이 미치광이가 되어 사람을 죽이며 왕이 될 자격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아버지-아들을 떠나서 왕권을 지키기 위한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왕명으로 죽이게 되면 아들 사도세자는 죄인의 신분이 되어버리며 역사의 기록에도 그렇게 남기 때문에 자결을 명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굶어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의 기록은 훗날 세손인 정조가 영조의 붕어 직전 승정원일기에서 세초해달라고 요청하고 이에 영조가 응하여 삭제되어 버렸기에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게 되었지요.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정 등등의 사실들이요.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그동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도세자의 비운
아비를 그렇게 잃을 수밖에 없었던 세손 이산
남편을 아들을 잃은 헤경궁 홍씨와 영빈이씨에만 집중했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아버지 영조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거든요.
지금까지 저는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양이 된 탓이 크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사도세자의 패악 자체에 가장 큰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매 회 다른 주제로 이루어지는 길 위의 인문학, 다음 시간이 더욱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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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업종료 후 학교 가는 날 풍경
메르스가 평택에서 시작하여 화성, 수원, 서울 등등 전국 각지를 휩쓸어 전 국토를 메르스공포에 떨게하고 있습니다.
병원 뿐 아니라 학교나 지역사회까지 퍼진 메르스 감염 우려로 학교가 휴업에 들어갔었는데요.
긴 휴업을 끝내고 어제인 6월 15일부터 오산의 초등학교, 중학교 등교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건물 내외부 방역과 소독완료!
가정에서 등교전 체온 측정을 하고 마스크를 착용할 것!
학교 현관 앞에서 발열체크 후 학교, 교실 입실이 가능함
(37.5 이상일 경우 귀가조치)
고열, 호흡기 관련 증상 또는 결석 예정 학생은 담임에게 미리 연락할 것!
학교에서 등교안내와 함께 전해 온 문자를 보며 현재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사스나 신종플루 때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지요...
등굣길은 그야말로 마스크의 물결입니다.
아이들도 서로의 얼굴을 보고 친구임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옷과 가방을 보고 확인은 하더라고요~~ ^^;;
<운천초의 등굣길, 체온 체크를 위해 줄을 서 있다>
등교는 시작했으나, 37.5 이상의 열이 있으면 컴 백 홈이 된다는 사실.
열을 재는 선생님이나 아이들이나 긴장하기는 매 한가지네요.
정상체온인 아이들은 이렇게 교실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메르스가 진정 국면에 들어서나 했는데, 아직도 확진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염려가 되지만,
오산시에서는 페이스북을 통해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주시니 안심이 되네요.
우리 오산시에서는 더이상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오지 않길
모두 건강하게 이 시절을 지나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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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교13단지 뒷동산 산책로 탐방. 소소한 즐거움
5월 마지막 주말
뜨거운 태양을 피해 산책을 하고자 세교 13단지 뒷 산길을 올랐다.
세교에는 이렇게 단지마다 자그만한 뒷산이 연결되어 있어서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아파트 뒤로 이렇게 나무가 그늘을 만드는 시원한 숲이 있다는건 참 복많은 해택중 하나인듯 하다.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반가운 산딸기]
어린 시절 길가에 널린게 산딸기였는데 요즘은 집중해서 찾아봐야만 만날수 있는 녀석. 초입부터 반갑다.
[야트막한 산책길을 안내해줄 불빛과 안전을 기원하는 돌무덤]
[도심속 자연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쉬는 곳]
그렇게 작은 산책길을 지나 오다보니 어느덧 우미아파트 뒷편에 도착
그동안 앞길로만 다녀서 보지 못했던 예쁜 벽화와 텃밭을 만날수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다음행선지를 알려주는 이정표]
[청량한 산길 다음에 만난 형형색색 벽화]
[벽화뒤로 새생명을 키우고 있던 텃밭]
그렇게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을 만나고 이정표에서 만난 문헌공원으로 향했다.
[문헌공원 가는길 만난 수청동 유적]
[문헌서원 영정각]
오산에 살면서도 알지 못했던 문헌서원. 이렇게 작은 산길 탐방중 새롭게 만나는 동네가 참 좋다.
[문헌서원 영정각]문헌서원
경기도 오산시 내삼미동에 있는 서원. 고려시대 문신, 유학자 최충(崔沖, 984~1068년)과 그의 아들인 최유선(崔惟善), 최유길(崔惟吉)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본래 1550년(명종 5) 황해도 해주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945년까지 보존되어 왔다. 이후 남북이 분단되어 해주 최씨 종중에서 오산에 다시 건립하였다. 서원 규모는 부지 12,213㎡, 영정각 89.1㎡, 서원 330㎡이다. 경내에는 영정각과 강당을 겸한 2층 건물이 있는데, 영정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서 청기와를 얹은 팔각지붕의 건물이며 1991년 건립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헌서원 [文憲書院]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