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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오산 평화의 소년상 건립기금 마련 전시회
작성자 OSTV 작성일 2016.01.11 조회수 2224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얄리얄리 얄랑성 얄라리 얄라" 청산에 대한 소망을 노래한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시구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고 불러보았을 고려가요 청산별곡에는 당대 사람들의 삶의 비애와 현실적 고통에서 벗어나  인생의 안식처를 찾으려는 소망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삶을 비애와 고뇌의 연속으로 파악하고 그것으로부터 탈출을 모색합니다. 여기에서 청산은 현실의 고통과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이상향, 도피처라 할 수 있지요.


2016년 1월 8일, 오산시청 로비에 전시된 오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전시회 중 한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작가 김정옥님의 "나비야 청산가자"라는 작품입니다. 유난히 파랗게 보이는 파란 나비 한 쌍이 보입니다. 작품을 응시하며 "청산"의 의미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전시회 리플렛에서 읽었던 소녀상 뒷편의 한 무더기 날아오르는 나비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 의지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참 해방으로 나아가려는 몸짓이다.라는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조선 소녀들이 고된 삶이 고려가요 청산별곡과 상응함을 발견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 조선 소녀들의 슬픈 역사는 고통과 아픔의 역사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해결하고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며, 기억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우리의 역사입니다.

 


오산 시민 여러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들어보셨지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전쟁 범죄에 의해 희생당한 조선의 수많은 소녀들이 있었습니다. 약 20만 명, 많게는 약 40만 명까지 이른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러한 위안부는 전례 없는 20세기 최대 규모의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인신매매 범죄의 희생양입니다.


일본은 만주 사변(1931.9.18)을 일으킨 1931년 이후부터 태평양 전쟁이 패전한 1945년까지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하였습니다.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동원된 여성들을 일본군 성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흉악무도한 범죄입니다. 우리가 자주 들었던 '위안부'라는 호칭은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지칭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1990년대 초반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올랐을 때는 ‘정신대(挺身隊)’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정신대는 ‘일본 천황’을 위해 솔선수범하여 몸을 바치는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가 노동력 동원을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대(노무동원)와 ‘위안부’(성동원)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름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여자 근로 정신대에 동원되었던 여성이 ‘위안부’로 끌려간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잘못 사용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종군 위안부’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종군’이라는 말에는 ‘종군 기자’ , ‘종군 간호사’처럼 자발적으로 군을 따랐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강제 동원하여 성노예 삼은 일본의 만행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은폐시킨다는 점에서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용어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여성을 강압적으로 동원하여 집단적 성폭력을 가한 것이고 피해 여성들의 삶의 조건은 ‘노예’와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UN 등 국제사회에서는 성노예(military sex slavery)와 군대 성노예제도(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위안부’라는 단어는 지극히 가해자 중심의 용어로 일본의 잔인하고 강제 동원된 사실을 왜곡시킬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폭력이 난무하고  최소한의 사람이 가질 기본권조차 유린당했습니다.  그러기에  ‘위안부’라는 단어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는데 있어서는 부적합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이 ‘위안부’라는 용어를 만들어가며 제도화했던 당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해 줄 수는 있습니다. 일본이 당대의 소녀들을 모집한 동기, 모집과정, 일본의 폭력성을 고려한다면 일본군 ‘성노예’라는 명칭이 적합하지만 생존자들이 자신을 ‘성노예’로 부르는 데에 또 한 번 정신적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위안부'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일본군 성노예라는 단어보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단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아래 짓밟히고 희생당한 우리의 조선 소녀들이 용어에서 조차 희생되어진 모습에 가슴이 더 아려옵니다.  이러한 일본의 범죄는 무고한 피로 얼룩져야했던 우리 아픈 역사의 기록으로, 또 조선 소녀들에게는 고통과 지울 수 없는 상처라는 흔적으로 남아있습니다.


평생을 숨죽여 살아야했고 위안부는 할머님들에게 주홍글씨가 된 채 고통의 꼬리표가 되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문제로 처음 이야기 되었을 때, 일부 사람들은 그들을 몸 팔고 온 여자로 낙인찍고 민족의 치욕이라고 생각한 이도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백발 할머님이 되었을지라도 그들의 고통과 아픔의 상흔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할머님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난날 일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정어린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더불어 우리 사회가 그 아픔을 알고 공감해 주는 것입니다. 뿐 아니라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할 때입니다.


이러한 취지 아래 오산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고자 합니다. 오산 문화공장에 이어 오산 시청
로비에서 소녀상 건립을 위한 기금 마련 전시회에 오산 시민들의 관심을 바라는 바입니다.

 


▶  사진 출처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 역사관  http://www.hermuseum.go.kr/ 


지금으로부터 20여년이 훌쩍 넘은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님이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밝히면서 위안부라는 일제의 만행으로 인한 피해는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월부터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수요 시위가 시작되었습니다.


고 김학순 할머님의 용기 있는 발언이 있은 후 다른 할머님들의 한맺힌 절규는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전쟁으로 여성의 인권을 무참하게 짓밟아 버린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할머니의 증언 이후 238명의 할머니가 위안부로 등록이 되었습니다.


여러 시민과 인권 단체들은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 정부에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그 후 수요 시위가 천 번째가 되는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처음 세워졌습니다. 20년이 넘는 기나긴 싸움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매주 수요일 할머님들의 외침 속에서 국내외에서 시민단체와 동포들의 움직임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미국에서는 위안부 결의안 상정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일본의 로비에 제동이 걸립니다. 그렇게 2001년, 2005년 미 하원 의원에 위안부 결의안이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되고 다시 2006년 결의안을 첫 상정합니다. 결국 하원의원 회기 종료와 더불어 자동 폐기가 됩니다.


그 후 아베신조 전 일본 총리는 2007년 3월 1일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망언을 하였고 워싱턴 포스트는 2007년 6월 14일  위안부 동원에 강압이 없었고 위안부는 대접을 잘 받았다는 기사를 냅니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비난하는 결의안 채택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쓴 로비자금은 - 산케이신문 2009년 8월 30일 보도-  45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억 6000만원입니다. 5억원의 로비에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이 되었습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 LED''s LIFESTORY


비겁하고 극악무도한 일본은 계속해서 역사의 진실을 은폐하려합니다. 위에 보이는 사진들과 육성이 담긴 할머님들의 영상이 있고, 지금도 생존하고 계셔서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증인 할머님들의 목소리가 있음에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진실을 왜곡하고 거부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사죄를 요구하는 운동에 국내외 시민단체와 동포들의 자발적 도움이 있었습니다. 일본정부의 위안부 결의안 저지에 대응하여 미국 한인 단체는 주말마다 지역구 의원을 방문하여 설득하였습니다.


위안부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드디어 2007년 6월 26일 미국 하원의원 외교통상위원회 본회의에 상정합니다. 결과는 찬성 39표, 반대 2표로  통과가 됩니다.  일본 총리의 직접 지휘 아래 막강한 로비가 있었지만 진실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미 하원 121호 결의안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성의 노예로 만든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하면서 사과하고 그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한다"

 

 

▶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위안부'수요시위 22주년,  2014년 1월 8일  서성일 기자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매주 수요일 12시면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기다리는 할머님들이 계십니다.

 


▶  소녀상과 아이들 :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는 현재 9살 남아입니다. 옆에 앉은 소녀는 불과 이 남아와 큰 차이가 나지 않은 12살에서 16살 정도일 조선의 소녀입니다. 이렇게 작고  여린 소녀들이 일본의 군홧발에 짓밟혔고, 죽임을 당하는 고통까지 있었습니다.


그 소녀들에겐 꿈을 꾸어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살아있음이 고통인 그 자체였습니다. 20만 명에 해당하는 소녀들이 먼 타국 땅에서 감당하기엔 너무도 버거웠을 그러한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힘없는 나라, 나라를 빼앗긴 조선은 그 소녀들을 지켜주지 못 했습니다. 

 


조각가 김운성, 김서경 부부가 제안하고 제작한 소녀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이 담겨있습니다.


작가 김운성씨는 “2011년 3월 수요집회를 본 뒤 일본의 사과가 없어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해서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찾아 문의한 것이 시작이었다”며 “처음에는 비석으로 만들려 했으나 일본의 방해공작이 이어져 이럴 거면 더 크게 만들어야겠다 싶어 동상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거칠게 잘린 머리카락은 부모와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단절된 상황을 표현했고, 1920~1940년
조선 소녀의 얼굴을 그대로 재현한 둥글고 납작한 얼굴은 단호하면서 굳은 의지를 나타내었다고 하였습니다.


김서경 작가는 "제작을 막으려는 일본의 압력이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래서 포개져 있던 손 모양이 주먹으로 바뀌었다. 주먹이 분노도 표현하지만 다짐도 표현한다. 끝까지 해결하자는 의지, 그런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또한 김서경 작가는 2014년 3월 19일 민족 문제 연구소 인터뷰에서 "눈 모양을 올리고 내려가며 고치기를 백 번했다. 나약하지 않은 인상을 주려 신경 썼다.  당당하게 일본 대사관을 응시하며 그들을 꾸짖도록"이라며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소녀상을 보고 있노라면 저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맨발이었습니다. 왜, 소녀는 맨발을 하고 있어야 했을까. 저 또한 늘 소녀의 맨발 의미가 궁금하였습니다. 오산 시청 전시회에서 관람 중인 어린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추워 보인다. 신발이 없어서,라는 단순한 대답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의 눈에 비춰진 신발이 없다라는 모습은 타의에 의해 잃어버린 무엇인가 있을 듯  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소녀의 맨발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신발조차 빼앗긴 비참한 상황을 의미하고,  땅을 딛지 못한 두 발은 고향에 돌아 와서도 정착하지 못한 할머니들의 애환을 상징한다는 글을 읽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신발조차 빼앗긴 상황...  가장 기본적인 생활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겠지요. 당시의 소녀들에겐 최소한의 인권도 없었습니다. 땅을 딛지 못한 두 발을 보고 있노라니 먹먹해져 버린 가슴을 쓰려야 했습니다.


소녀상 어깨 위의 작은새는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들과 살아 남아 싸우는 현재의 우리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며, 그림자는 소녀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풀리지 않은 한과 가슴앓이를 의미한다하였습니다. 소녀상 옆의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님들의 빈 자리입니다. 이와 더불어 소녀들의 가슴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우리 오산 시민들을 위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주간 조선 정자열 기자는 소녀상 자체가 일제의 잔혹함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기 때문에 일본이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참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일본의 잔혹성이 그대로 묻어나기에, 피하고 싶고 감추고, 덮어버리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의 강제성과 폭력성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공식적인 문서도 부족하고 할머니들의 증언은 기억에 의존한 피해 증거자료였습니다. 일본은 소녀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본 앞에  소녀상은  슬픔과 분노, 우리 할머님들의 한이 그대로 서려있다고 하겠습니다. 당시 일본 군인들의 잔혹함에 희생된 우리의 소녀들이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절규 맺힌 눈물과 울분을 토하고 있습니다.


이 소녀상은 해외에서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과 디트로이트에는  소녀상이 건립되면서 위안부 문제가 ‘20세기 여성 인권 유린 문제’로 부상했고  미국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임 당시 위안부를 ‘강제적 성노예(enforced sex slave)’로 표기하도록 지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위와 같이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오산에 건립 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슬로건으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급으로 동참을 기다립니다.
지난 12월에 오산 문화 재단 문화공장에서 기획 초대전을 하고, 오는 1월 15일까지 오산시청 로비에서 건립을 위한 모금 전시회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 오산 시청 로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오산중 여학생의 모습입니다. 날씨가 다소 추웠던 날이었는데 시민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중학생은 자신과 같은 나이에 할머니들이 겪었을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를 전합니다. 차가운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지요.

 


▶ 우리 오산 시민의 깊은 관심과 따뜻한 손길을 기다려 봅니다. 오산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주세요. 그 옛날 소녀들을 지키지 못했던 조선이었지만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그날의 할머님들을 보호하고 지켜줄 의무가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할머님들을 안아야 할 때입니다.

 


▶ 무엇을 느끼고, 보았을까요. 작가의 그림 앞에서 잠시 멈춰선 모습입니다. 우리의 할머님들이 받았을 고통과 상처, 아픔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을 조금이나가 공감하고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한 맺힌 고통의 세월을 가슴에 묻고 살았을 우리의 할머님들의 영상을 보는 학생과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 학생들에게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몸과 영혼과 마음의 고통을 전달하기엔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에게 아픈 역사를 가르치고,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기에 아이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는 올바른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힘없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일본 제국주의에 무참히 살해되며 짓밟혔을 우리 조선 소녀의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며 고민을 해 봐야 합니다. 아픔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역사의식을 제대로 고취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몫입니다.  지난날 할머님들의 한과 절규 맺힌 눈물이 헛되지 않게 말입니다.

 


▶ 오산 출생 작가 권윤덕님의 글입니다.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다소 어려운 책이지만 자연스럽게 할머님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는 있었습니다. 한중일 공동 기획으로 출간된『꽃할머니』이야기입니다.  권윤덕님은 말합니다. 피해자의 증언에 무언가를 요구하기보다, 먼저 그들이 겪은 아픔에 공감하는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말이지요. 1940년 무렵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심달연 할머님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든 이 책은 2010년에 출판되어 지난해 개정판이 출판되었습니다.


일본의 폭력에 저항할 힘조차 없었던 소녀들의 이야기,
일본군 성노예로 강제 동원되어 아픔과 상처로 평생을 살아야 했던 우리의 할머님들을 기억하고 보듬어야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 일들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합니다. 방송에서 종종 내용은 나오지만 구체적으로 안다는 것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아직 경험과 지식이 많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아픔은 느낄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느낌을 간직한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서 차츰 그 고통에 공감하고 그 까닭과 의미를 묻고 깨달아 가는 과정을 겪는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자라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면 아이들의 공감 이해의 폭은 더 깊고 넓어지며 풍부해 질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지켜 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 꽃할머니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어린 친구들에게 소녀상을 통한 교육으로, 또한 이와 관련된 책으로 할머니 이야기를 전해 보는 것은 어떠할까요.


지금도 끊임없이 전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꽃할머니가 겪은 아픔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꽃할머니의 아픔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할머니는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지금 세상에는 그런 일 없어야지, 나같은 사람 다시는 없어야지. 내 잘못도 아닌데 일생을 다 잃어버리고......."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됨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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