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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산시 독산성을 튼튼하게 보수한 변응성 장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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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OSTV | 작성일 | 2014.04.11 | 조회수 | 2222 |
오산시 독산성 하면 우리는 권율 장군이 세마의 기지로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중요한 장군이 한 분 더 계시니 그 분이 변응성 장군이다.
[독산성의 모습]
독산성 축성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기록에 의하면 원래 백제가 쌓았던 성이며,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던 곳으로, 1593년 권율 장군이 왜적을 물리친 산성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독산성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무너진 곳이 많아 그 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선조 35년 즉 1602년에 이 성을 다시 보수하게 되는데 이를 담당한 분이 당시 부사로 계시던 변응성 장군이다.
변응성 장군은 고향은 원주이고,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여 강계부사를 지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주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왜군이 먼저 경주를 점령하여 부임하지 못하였다.
이듬해 류성룡의 천거로 경기방어사가 되었다가 곧 이천부사가 되었는데, 여주목사 원호와 협력하여 남한강 중류 지역에서 적의 보급로 경비대를 기습 섬멸한 분으로 1594년는 광주 · 이천 등의 산간에 출몰하는 토적을 토벌하였고,
1596년에 이몽학 난이 일어났을 때 용진과 여주 파사성을 수비하였으며, 광해군 즉위 후 훈련대장을 거쳐 판윤에 오르게 되고,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 (나라에 공로가 있는 분을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되었던 분이다.
[변응성 장군의 묘]
변응성 장군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산 26-4에 모셔져 있으나 우리 오산시 지곶동 242번지에는 “변응성 선정비”[邊應星善政碑]가 있다.
[변응성 선정비는 화살표 방향 바로 옆에 있음]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
오산시 지곶동에 “변응성 선정비”가 세워지게 된 것은 1602년(선조 35) 독산성을 석성(石城)으로 고쳐 짓는 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원래 변응성 선정비는 독산성 밖 서쪽 주차장 근처에 있었으나 독산성 보수공사를 할 때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독산성 을 수축하고 개축한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가 초라한 모습으로 권율 장군의 전첩비 옆에 자리 잡고 있으니 필자의 마음이 약간은 안타까웠다.
[권율 장군의 전첩비]
[권율 장군의 전첩비 옆에 서 있는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
필자도 주소를 갖고 찾아 갔으나, 찾아간 주소지에는 권율 장군의 전첩비만 있었지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는 찾을 수 가 없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여러 번을 한 끝에
권율 장군의 전첩비 옆 한편에 초라하게 서 있는 하얀 비석을 발견하고 읽어 보니 그 것이 바로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였다.
우리 오산에 있는 역사들을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는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앞으로도 필자는 계속하여 조용히 숨 쉬고 기다리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 세상 가운데 나타내 보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이 역사들의 현장이 다시 한번 살아나게 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려 보려 한다.
사랑하는 오산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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