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오산시 소식을 만나보세요.
언제나 행복을 전해주는 오산시 인터넷방송 OSTV
컨텐츠
총 3488건의 게시글이 등록되었습니다.
-
오산시 독산성을 튼튼하게 보수한 변응성 장군
오산시 독산성 하면 우리는 권율 장군이 세마의 기지로
왜적을 물리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중요한 장군이 한 분 더 계시니
그 분이 변응성 장군이다.
[독산성의 모습]
독산성 축성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기록에 의하면 원래 백제가 쌓았던 성이며,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이용되었던 곳으로,
1593년 권율 장군이 왜적을 물리친 산성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독산성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무너진 곳이 많아
그 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선조 35년 즉 1602년에 이 성을 다시 보수하게 되는데
이를 담당한 분이 당시 부사로 계시던 변응성 장군이다.
변응성 장군은
고향은 원주이고,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하여 강계부사를 지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주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왜군이 먼저 경주를 점령하여 부임하지 못하였다.
이듬해 류성룡의 천거로 경기방어사가 되었다가 곧 이천부사가 되었는데,
여주목사 원호와 협력하여 남한강 중류 지역에서 적의 보급로 경비대를 기습 섬멸한 분으로
1594년는 광주 · 이천 등의 산간에 출몰하는 토적을 토벌하였고,
1596년에 이몽학 난이 일어났을 때 용진과 여주 파사성을 수비하였으며,
광해군 즉위 후 훈련대장을 거쳐 판윤에 오르게 되고,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 (나라에 공로가 있는 분을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되었던 분이다.
[변응성 장군의 묘]
변응성 장군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산 26-4에 모셔져 있으나
우리 오산시 지곶동 242번지에는 “변응성 선정비”[邊應星善政碑]가 있다.
[변응성 선정비는 화살표 방향 바로 옆에 있음]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
오산시 지곶동에 “변응성 선정비”가 세워지게 된 것은
1602년(선조 35) 독산성을 석성(石城)으로 고쳐 짓는 데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원래 변응성 선정비는 독산성 밖 서쪽 주차장 근처에 있었으나
독산성 보수공사를 할 때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독산성 을 수축하고 개축한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가
초라한 모습으로 권율 장군의 전첩비 옆에 자리 잡고 있으니
필자의 마음이 약간은 안타까웠다.
[권율 장군의 전첩비]
[권율 장군의 전첩비 옆에 서 있는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
필자도 주소를 갖고 찾아 갔으나, 찾아간 주소지에는 권율 장군의 전첩비만 있었지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는 찾을 수 가 없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여러 번을 한 끝에
권율 장군의 전첩비 옆 한편에 초라하게 서 있는 하얀 비석을 발견하고 읽어 보니
그 것이 바로 변응성 장군의 선정비였다.
우리 오산에 있는 역사들을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는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앞으로도 필자는 계속하여 조용히 숨 쉬고 기다리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
세상 가운데 나타내 보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이 역사들의 현장이 다시 한번 살아나게 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려 보려 한다.
사랑하는 오산 화이팅!
-
유쾌한 우리동네 이야기, 오산봄누리 예술축제 연극 '늙은 자전거' 오늘도 신랑의 퇴근은 늦고, 아이들과 "뭐 해 먹을까.." 하고 저녘반찬을 고민하던 중, 전체관람가 연극인데 보겠냐는, 잘~ 생긴 지인의 연락을 받고는 "아싸~" 하며 집을 나섰다. 저녘은 대충 차안에서 주먹밥으로 해결한 후, 오랜만에 찾은 오산문화예술회관은 여전히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연극은 아버지가 객사하면서 홀로 남게된 풍도가 할아버지와 만나게되면서 시작한다. 시설에 보내지만 말아달라는 풍도와 이런 손자 둔적이 없다고 외면하는 할아버지. 옆에 앉은 7살짜리 아들 녀석이 자꾸 묻는다. "엄마~ 저 할아버지 나쁜 사람이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구별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로서는 등장인물이 나올 때 마다 이렇게 묻곤 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엔 나쁜 사람은 한 명도 안 나오는 것 같다. 단지,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기 위해, 가끔 그렇게 비춰질 뿐이다. 무대가 좀 어두운 탓에 무거운 주제인가 싶어 아이들이 슬쩍 걱정되던 차에, "따라오지 말라니까네~" 하는 할아버지를 향해 "갈데가 없다니까네~~" 하는 풍도의 사투리를 듣고는 객석 여기저기에서 첫번째 웃음이 빵빵 터져나왔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깔깔대고 웃으며 몰입하기 시작했고, 나도 편하게 슬슬 빠져들게 되었다. 마침내, 할아버지와 손자 풍도의 동거는 시작되었지만, 소소한 오해로 인해 둘의 갈등은 점점 더 커져가는 듯 했다. 만물상 자전거를 끌고 장터를 떠돌아다니며 생계를 이어가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헤어지기 싫어 학교를 다니지 않고 함께 장사를 배워나가는 손자 풍도. 풍도는 여전히 이런 저런 이유로 경찰서를 오가며 할아버지를 걱정시킨다. 하지만, 이런 갈등이 생길때마다 오히려 둘은 더욱더 진한 핏줄의 정을 느끼며, 서로를 점점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어느날, 할아버지는 자신의 몸이 점점 이상한 것 같아 병원을 찾게되고, 마음씨 착한 의사는 할아버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 이상이 없으니 지금처럼 행복하고, 마음편히 살라고, 웃으며 거짓말을 한다. 물론, 돈도 받지 않으니 걱정말라며, 풍도에게 할아버지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당부만 할 뿐이다. 둘은 의사의 말을 믿는 척하며 서로를 안심시키고 병원문을 나서지만,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손주에게 싸움의 기술과, 장사잘하는 법 등을 차근차근 전수해주기 시작한다. 또한, 말 안듣는 손자 풍도의 이름을 거꾸로 한 도풍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해주며 할아버지의 바램을 은유적으로 전달하게 된다. 자신의 만행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간간히 풍도는 "할아버지~ 이거 내 얘기아니야?" 하고 묻지만, 할아버지는 "아니야~~ 이건 도풍이 얘기야. 넌 풍도고 얜 도풍이잖아" 하며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슬픈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능청스런 할아버지와 고개를 갸웃거리는 풍도의 모습에 어른 아이 할 것없이 객석에선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눈치빠른 풍도역시 매일 잠만자려 하고 부쩍 힘이 없어진 할아버지를 보면서 부처님과 하느님을 찾아 할아버지가 오래 오래 살기만을 빌게 된다. 이제 정말 생이 얼마남지않은 할아버지는 혼자 남을 어린 손자를 위해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자전거에 모터를 달아주고, 운전을 해보라 한다. 풍도는 자전거가 너무 쌩쌩~ 잘 나간다며, 이제는 혼자서도 잘 탈 수 있다며 좋아하고, 할아버지는 이제야 편안한 미소를 지은채 자전거에 몸을 기대고 서서히 잠에 빠져든다. 이렇게 연극은 마음이 아리아리할 만큼 슬프게 끝이나는 듯 하지만, 경쾌한 음악과 함께 밝은 무지개 조명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떠올리며 저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려간 후, 등장인물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하는데, 아래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연극에는 할아버지와 풍도 말고도 여러명의 배우들이 함께 등장한다. 원리 원칙을 따져가며 할아버지의 성질을 돋우는 신참내기 경찰아가씨, 엄마없는 풍도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섹쉬~한 다방아가씨 그리고, 다방아가씨를 향해 끝없이 구애하는 자존심없는 속옷가게 아저씨. 다소 마음이 무거울 수 있는 소외계층의 이야기 이지만, 소소한 웃음과, 조연배우들의 유머있는 연기는 연극을 유쾌한 가족극으로 만들었다. 초등생정도의 자녀를 둔 가족이라면 모두 함께 관람할 것을 권한다. 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이렇게 모여살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한다.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이런 연극뿐 아니라 각종 음악회와 영화관람등 다양한 공연이 수시로 열리고 있다. 이번 주말에 공연이나 전시관을 찾는 등 문화생활을 계획한 가족이 있다면, 멀리갈 것 없이 오산문화예술회관을 들러보길 권한다. (오산문화 재단 홈페이지 : http://www.osanart.net/ , 대표전화 031-379-9900)
-
우리나라 커피의 역사를 아시나요?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1890년 전후로 알려지고 있으나
커피의 전파 경로에 대하여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그 경로들을 살펴보면
1888년 인천에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의 다방에서
커피가 처음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있고
1895년 발간된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보면 1890년경
중국을 통하여 도입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892년 구미재국들과 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외국 사신들이
궁중에 드나들며 궁중과 친하게 지내던 알렌이나
왕비의 전속 여의였던 호른 등이 궁중에 전했다는 견해도 있다.
사진 가운데 서양식으로 지어진 3층 건물이 대불호텔이다.
경인선이 놓이기 전 제물포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인천에서 하룻 밤 숙박을 한 후 서울로 향해야 했고,
대불호텔은 이러한 수요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공식문헌상의 최초 기록은
1895년 ‘을미사변’ 때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해 있을 때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권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이후 러시아 공사에서 커피를 즐기시던 고종 황제는 환궁 후에도 덕수궁에
‘정관헌’이라는 로마네스크식 회랑 건축물을 지어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다고 전한다.
[서울시 중구 정동 5-1번지에 있다. 2004년 2월 등록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었으나,
사적 제167호 덕수궁(현재 사적 124호)과 지정범위가 중복되어 2008년 6월 지정해제되었다]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기시는 것을 안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고종의 커피 시중을 들도록 독일계 러시아 여인 손탁을 추천하게 되었고,
손탁은 고종의 커피 시중을 극진히 들어 고종은 이에 보답으로
옛 이화여고 본관이 들어서 있던 서울 중구 정동 29번지 황실 소유의 땅 184평을 하사하게 된다.
손탁은 1902년 이곳에 2층 양옥을 짓고 ‘손탁호텔’ 이라 하고
이곳에서 커피하우스를 만들어 판매하게 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하우스(다방)가 되었다고 한다.
[건축년도 : 1902년 신축, 1922년 철거 / 소재지 : 정동 29번지]
한편 대중적인 최초의 다방은 1909년 남대문역 근처에 있던 기사텐 다방이 최초였다고 전하여 지고 있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인들이 명동 및 종로 등에 근대적 의미의 다방문을 열게 되었고
이곳에 한국의 지식인들이 처음 드나들면서 대중화가 시작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한 다방의 증가와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이 주둔하면서
군용식량에 포함되어 있던 인스턴트커피가 우리나라 커피문화 발전의 촉매제가 되게 된다.
1970년대 초 동서식품이 미국과 손을 잡고 맥스웰하우스라는 상표를 만들어 생산하면서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커피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1976년 커피믹스의 개발, 자판기 등의 등장으로 커피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다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대중의 커피 취향이 고급화가 시작되면서
88 올림픽을 계기로 원두커피 전문점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 때 압구정동의 ‘자뎅’이 원두커피의 시초가 된다.
이후 1999년 스타벅스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연 것을 기점으로
국내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 시장 규모가 확대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료출처 : 커피앤커피 / 네이버 카페 및 지식인]
-
오산시 도서관 3기 문화강좌 접수 스타트!!! 언제? 4월 11일~
요즘 오산시 블로그에 도서관 소식이 부쩍 많이 올라오죠?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오산시 곳곳에 도서관이 위치해있어서
"생활과 도서관이 교집합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 많아서"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제가 타 지역에 살 때는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교육상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했는데요.
도서관들이 죄 산 중턱에 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에도 불편해서
몇 번 가보고는 몸살이 나서 아예 포기를 했었는데요.
오산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도서관 대출증을 만든 일이에요.
돌 안된 아이까지 만들었거든요...ㅋㅋㅋ
도서관에서 얻은 자격증만 해도 4개구요.
모두 아이를 가르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지금은 제가 가르치고 있네요.
원래 성인 대상 중국어 회화를 하다가 이번 회기에는 어린이 중국어 동요를 하고 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시끌벅적하고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돌발 질문"들에 당황스럽지만
기억력 좋고 항상 즐거운 아이들 덕에 기분좋게 수업을 한답니다.
<앞에 나와서 기꺼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好!(니 하오)도 모르고 온 아이들이
叫什名字?(너는 이름이 뭐니?) 등의 여러 중국어들을 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만 해요.
5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회화 수업을 하게 되는데,
다행히 아이들이 지겨워하지 않고 계속 하고 싶어해서 감사하네요.
5월부터 7월까지 도서관 제3기 문화강좌가 이루어지거든요.
이번 금요일인 4월 11일부터 수강신청이 있으니,
문화강좌 내용을 미리 알아보시고 접수하시길 바래요.
인기있는 강좌는 몇 분 만에 마감된답니다.
빨리 접수하는 노하우는 미리 회원가입을 해 둔 뒤,
몇 분전에 미리 로그인을 해서 대기하는거죠... ^^
**************************************************************
접수기간 : 2014. 04. 11.(금) 09:00 ~ 04. 17.(목) 18:00 (7일)
접수방법 : 인터넷접수(모집정원의 100% / 선착순)
※홈페이지(www.osanlibrary.go.kr) 문화마당 문화강좌
* 추가인원 예비 접수하여 결원 시 충원(전화접수 / 선착순)
수 강 료 : 무료 (강좌에 따라 교재비 및 재료비는 수강생 부담)
강의내용 : 홈페이지 문화마당 강좌자료실 참조 및 전화문의
※ 본 일정표는 도서관의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 모집정원의 60% 미만 신청하는 경우 강좌가 취소될 수 있습니다.
-
전국노래자랑 오산시편과 오산오색시장의 상인들
오산 오색시장 100주년을 맞이한 2014년.
개장 100주년을 기념하여 오산에서 KBS 전국 노래자랑이 열렸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의 오산시편은 예심부터 뜨거웠는데요.
2005년 이후 9년 만에 오산을 찾은 터라
전국노래자랑을 기다린 많은 분들이 예심 무대를 찾았기 때문이지요.
350여팀이 넘는분들이 참여하셔서 1차 예심에서 60팀이 올라갔으나,
방송에 나오는 무대에 선 팀은 12팀에 불과했습니다.
대학 입학보다 치열한 경쟁률이지요?
무대에 선 12팀 중 오색시장을 알리기에 온 몸을 내 던진 두 사람을 만나보았습니다.
오색시장의 원더우먼 원미정씨와 오여사 김영수씨인데요.
보고만 있어도 흥이 나는 두 사람은 현재 오색시장 고객지원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전국 노래자랑에 나가게 되었는지 궁금하시죠?
혹시 저만 궁금한가요...?
Q. 준비 과정의 에피소드와 힘들었던 점이 있었나요??
김영수: 전국에 나가는 방송이라 심리적 부담이 많았습니다.
망설여졌지만, 지역경제과 과장님과 고객지원센터 상인회 회장님의
후원을 등에 입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원미정씨는 무대를 즐기는 스타일이지만, 저는 사실 무대에 오르는 것이 어렵긴 했지요.
하지만, 제가 한 몸 던져서 시장을 홍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로지 그것 하나만 생각하며 참가했지요.
그래서 더 신바람이 났던 것 같기도 해요.
저한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원미정: 사실 저희 오색시장 상인 분들 중에는 노래 잘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지난 번 BI선포식때도 그 솜씨를 뽐내주셨는데, 이번 전국노래자랑에는 다들 망설이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전국적으로 나가는 방송, 큰 무대이기 때문에 꺼려진 것 같아요.
상인도 그렇지만, 저도 예심하는 그 날까지도 망설였어요. 제가 제 노래 실력을 잘 알고 있고요.
'그런 큰 무대에 서 본 적도 없고 노래를 배워본 적도 없는데, 나가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 생각했지요.
얼떨결에 나갔지만 본선까지 올라가서 참 좋았죠.
무대에서 더 많은 분들께 감사인사를 했어야 하는데, 긴장해서 다 못한 것이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진행하는 송해씨에게 이 무대를 앞으로도 20년 동안 지켜달라고 인사한 것은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Q. 원더우먼과 오여사 캐릭터는 본인들이 만드신건지?
원미정: 맘스마켓을 하면서 만들어진 것을 제가 입게된 거지요.
젊은 엄마들은 체력도 있어야하고, 돈도 벌로가야하고 살림도 하면서 양육까지 해야하는
원더우먼이 되어야하는 것에서 착안해서 만든 캐릭터에요.
김영수: 오여사도 원더우먼과 같은 날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상인회에서 일을 하다보니 제가 오여사를 하게 되었네요.
여기서 근무를 하다보니 어쩌다가 입게된 오여사캐릭터인데, 다들 닮았다고 해요.
Q. 두분 고향은 오산이신가요?
원미정: 원래 고향은 합천인데요.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과 수원으로 이사를 했고,
결혼후 오산에 정착했습니다. 벌써 13년이 넘었어요.
김영수: 저는 고향이 서울이에요. 여러 사정으로 큰 아이가 8살 때 오산으로 와서
지금 21세가 되었으니, 벌써 13년이네요.
비슷한 시기에 오산으로 이사 온 그녀들. 이웃으로 살면서 친분을 쌓았고,
고객지원센터에 근무하기 전부터 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원미정씨가 먼저 고객지원센터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2개월 후 김영수씨가 같이 일을 하게 되었고요.
보기에도 두 사람이 참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로도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찰떡궁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장 상인회 일을 돕는데 많은 이점이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특히 원더우먼 원미정씨는 상인들이 “이쁨”을 한 몸에 받고 있어서요.
행사에 필요한 여러 물품을 상인들게 “협찬”을 받는다고 하네요.
Q. 얼마나 연습하셨나요?
원미정: 실제 맞춰보는 것보다 그 전에 고민하는 과정이 더 길었어요.
거의 일주일을 참가할지,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김영수씨: 오색시장 홍보에 초점을 맞추어서 구상을 했어요.
원미정씨가 거의 준비를 했고, 저는 얼굴을 가리고 나가는 조건으로 나섰는데,
결국 얼굴을 공개했지요...
그래도 원미정씨 믿고 나선 무대에서 즐길 수 있었어요.
2014년은 평생에 잊지못할 해가 될 꺼에요.
두 사람을 전국노래자랑 무대로 "등을 떠민"
오산오색시장상인회 회장님과 총무님도 함께 만나보았는데요.
원미정씨와 김영수씨의 성실함을 크게 자랑하였습니다.
Q. 전국노래자랑에서 상인회측의 준비와 기대한 것이 있으셨나요?
상인회 총무: 상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시장을 홍보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만 못했지요. 상인들 중 4팀이 예심을 봤고, 1차 예심에 3팀이 올라갔으나
결선은 1팀 밖에 올라가지 못했어요. 더 많은 분들이 나섰으면 기대했지만,
사실 무대를 보니 대단히 떨리겠더라고요.
상인들이 참가 여부를 고민할 만큼요.
본선보다 예심이 더 재미있었어요.
그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리 원더우먼이 올라갔지요.
오색시장의 대표 캐릭터 원더우먼과 오여사가 나가서 기뻤습니다.
Q. 원더우먼, 오여사 캐릭터에 대한 생각은요?
상인회 총무: 원더우먼과 원미정씨, 오여사와 김영수씨가 참 잘 어울립니다.
오색시장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온갖 궂은 일에 발 벗고 나서서 캐릭터가 만들어진지 1년 여 밖에 되지 않는데도 잘 맞지요.
Q. 전국노래자랑으로 인한 오색시장 홍보에 대한 기대도 있으셨지요?
상인회장: 이번 노래자랑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찾아서 오색시장 100주년 기념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지요.
작년 6시 내고향으로 인한 홍보도 엄청났는데,
시청률이 더 높은 전국노래자랑으로 인해 오색시장 홍보 효과가 더 크리라 기대합니다.
오색시장 상인회 인터뷰 후
예심 무대를 보신 분들은 만났을 오색시장의 "귀염둥이" 상인들 중 한 분을 만났습니다.
비록 탈락의 고배를 마셨으나, 쟁쟁한 실력자들 속에서 떨어진 거라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는 겸손함을 보였습니다.
그럼, 탈락의 소감을 들어볼까요...?
상인: "우리는 오색시장에서는 대상을 먹은 팀이거든요?
BI선포식에서... 시장에서는 먹히는데, 그런 큰 무대에선 안되더라고요~~~ㅋㅋㅋ
겨우 이틀을 연습하고 갔는데, 다들 너무나 잘하더라고요.
오산에 그렇게 노래 잘하고 끼있는 분들이 많은지 몰랐어요.
자신은 없었지만, 함께 하기 위해 총대를 멨지요.
저를 포함해서 모두 7명이 참여를 했는데요. 낮에 장사를 하고 저녁에 만나서 연습을 했는데,
7명을 맞추기도 힘들었고 시간맞추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구성된 후에 연습하는 과정은 참 재미있었어요.
같이 가발도 맞춰입고 컬러풀한 바지도 입고 나름 화려했으나, 아쉽게도 떨어졌지요.
그래도 우리는 오색시장에서는 통하는 팀이니까 앞으로 많이 활동할 수 있겠지요?? ㅎㅎㅎ
저는 오산시장에서 장사를 한지 25년이 되었는데요.
시장이 많이 바뀌었어요~ 척사대회도 생기고 각종 행사가 열리면서 상인들의 단합이 도모되는 것 같아요.
또 상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상인대학을 통해 의식개혁이 되고
우리 시장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교육이 사람을 바꾸는 것 같아요."
오색시장 여성회 총무님을 인터뷰하며 운영하신다는
국수집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우리 오산의 오색시장이 모두가 좋아하는
우리의 전통시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봅니다^^
-
놀면서 책보는 오산시 꿈두레도서관으로 놀러가자~!
교육! 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숙제
독서! 지루하면서도 재미와 즐거움이 때에따라 다른 영원한 마음의 양식?
그렇다면...독서교육은??
밑도 끝도 없고 지루하다가도 때에 따라 재미와 즐거움이
개인 성향에 따라 다른 영원한 마음의 양식?? ㅎㅎ
공부, 학습, 독서 ... 이 모두가 내 맘대로 노는것처럼 즐겁고 재미난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처음부터 놀면서 배움을 익히지 못하고
배움을 위해 책상 앞에 앉아야만 했던 우리의 교육방식이
책장 넘기는것을 지루하고 어려운 일로 인식되어지게 하지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어린시절 배움과 학습이 놀이에서부터 시작하고 새로운 것을 습득하기위해
놀이학습이 반복 되었더라면 지금 우리가 한 손에는 책을
또는 가방속에 늘 책 한권이 아니면 카페에서 공원밴치에서 차안에서
독서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놀면서 독서하는 "놀이형 도서관" 들어보셨습니까!
당연 들어보셨을 겁니다.
교육, 문화, 체험, 놀이가 함께 어우러진 꿈같은 도서관에서
그것도 맘껏 놀면서 책을 즐길수 있다니 정말 기다려지는 도서관입니다.
이름하여 "꿈두레 도서관" 사전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도서관 내부와 건물 주변이 너무나 훌륭하여
둘러보며 내내 감탄하며 집과 가깝다는것이 행복했습니다.
도서관 내부는 미리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개관식때 오셔서 직접 느끼시기 바랍니다.
저는 바깥 전경 일부를 살짝 맛보여드립니다.
공원놀이터 전경
독서캠핑장 숙소동 전경
꿈두레 도서관 건물뒤 전경
도서관옆 산책로
자연학습장 (밭)
야외 공연장
독서캠핑장 가는길
구경 잘 하셨나요~? 어떠셨나요~?
꿈두레도서관은 여러분의 기대를 분명 채워줄것이라 확신합니다.
드뎌 꿈두레도서관 개관식이 1주일 앞으로 바짝 다가왔는데요~
꿈두레 도서관은 말그대로 꿈과 희망을 함께 만들어가는 꿈같은 도서관!!
기존의 도서관 분위기와는 상반된
놀면서 책읽고 공연도하고 질문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혁신 도서관입니다.
옛 도서관에서 놀며 떠들며 책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도서관을 가까이하고 책을 벗삼아 책을 논하며
책과함께 즐기는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것은 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바로 꿈두레 도서관이 이러한 역할을 할 멋진 도서관이 될테니까요.
애들아~ 우리 책보러 놀러가자~
꿈두레 도서관 개관을 기념하여 2014년 4월 중
아빠와 함께하는 1박 2일 독서캠프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참자가 모집을 현재 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www.osanlibrary.go.kr/jungang선착순 접수중입니다.
여러분 서둘러 접수하세요.
▶ 접수기간 : 2014. 3. 28(금) 09:00 ~ 4. 2(수) 18:00 (6일간)
▶ 접수방법 : 중앙도서관 홈페이지 인터넷 접수(모집정원의 100%) 선착순
▶ 참 가 비 : 무료
▶ 준 비 물 : 침구세트, 세면도구 , 필기도구, 간식, 과자집 만들기 재료, 도서관 회원증 반드시 지참
※ 과자집 만들기 재료
- 다양한 모양의 과자(웨하스, 건빵 등) 빵(식빵, 카스테라) 등 사탕,
- 붙이는 재료 및 도구 : 잼 또는 생크림, 작은 빵칼 또는 수저
▶ 문 의 : 꿈두레도서관 담당자 ( ☎ 031 - 8036 - 6520 )
1박 2일 독서캠프 운영 프로그램 계획안 입니다. 참고하세요!
-
2014년 화성동부경찰서 어머니폴리스 발대식
화성오산 동부경찰서는 관내초등학교 48개교 어머니 학부모 폴리스 회원
3727명중 임원 및 일부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4년 어머니 학부모 폴리스 합동 발대식을 가졌다.
이 날 행사는 1부 경기경찰청 홍보단 축하공연이 울려퍼지며 발대식의 오프닝을 알리고
다양한 곡으로 어머니폴리스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봄 날의 분위를 연출하였다.
2부 순서로는 내빈소개 및 윤동춘 화성동부경찰서장님 인사말씀과
작년 활동 보고 및 주요활동 내용 그리고 전년도 감사장 수여와
2014년 연합단 위촉장 수여 및 기념촬영으로 진행하였다.
오산시청과 화성시청 가족여성과 직원분들과
화성동부 교육지원청 관계자분들이 참석해 자리를 더욱 빛내주셨다.
어머니 폴리스 주요 활동 내용
▶ 어머니 폴리스
- 하교 시간대인 12 ~ 17시 사이 초등학교 주변 놀이터 공원 등
대아동 범죄 취약지역을 중점순찰 한다.
- 비행청소년 선도, 범죄예방 캠페인 등 치안봉사 활동을 한다.
▶ 학부모 폴리스
- 점심시간 및 쉬는 시간 학교내 우범지역 순찰, 학교지도 등
학교폭력 예방 순찰 및 비행 교칙 위반 등 생활지도를 한다.
-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교육 등 치안 봉사 활동을 수행한다.
2014년 어머니 폴리스 연합단으로 선발된 임원 및 회원들은
올 한해 아동안전 예방을 위해 1년동안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끝으로 화성동부 어머니폴리스 연합단장(이혜영)님은
올 한해 어머니폴리스 연합단을 어떻게 이끌어가며 활동할것인지 그 포부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안녕하세요, 2014 화성동부 어머니폴리스 연합단장 이혜영입니다.
대자연의 만물이 소생하는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화성동부 어머니폴리스는 화성동부와 오산의 48개 초등학교 어머니폴리스분들이
열심히 봉사해주셔서 작년 2419명에서 올해 1300여명이 늘어난
3727명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4대 사회악 중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및 학교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민·경 협력체제로 아이들의 교내, 하굣길 통학로 주변을 순찰하고,
유해환경을 차단하며,경찰인력만으로는 대처하기 미흡한
학교주변의 치안을 담당 하는 데에도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 대아동범죄 예방을 홍보하는
연합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시민들과 학생 개개인에게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범죄와 사고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꿈꾸며,
모든 부모님들과 한마음이 되어 열심히 나아가는 연합단이 되겠습니다.
화성동부 어머니폴리스 화이팅!!!
-
바리스타에 도전하는 어르신들, 꿈두레도서관에서 만나요^^
얼마 전 오산시 노인지회에서는 만 60세 이상 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오산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2주에 걸쳐 바리스타 교육을 실시하였다.
여기에 참여 한 사람들은 10명으로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바리스타 교육에 임하였다.
[바리스타 교육받는 학생들]
바리스타 교육은
- 바리스타로서의 서비스 자세
- 커피의 종류 및 문화
- 커피의 가장 기본인 에스프레소 만드는 방법 및 여러 가지 커피 만들기
- 스무디 등의 음료 만드는 방법 등 여러 가지를 교육하였다.
[커피 가는 기계와 뽑는 기계]
나이가 있어 배우는 것에 대한 일정의 촉박함과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에 도전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매일 오후 2시에서 5시까지 이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대단하였다.
[에스프레소 커피 만드는 장면]
젊은이들 같이 손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하였으나
계속적인 연습을 통하여 젊은이들 못지않게 성장하여 가고 있다고
담당 교수는 이야기 하여 주었다.
[스무디 만드는 모습]
[한 교육생의 '커피라떼' 첫 작품 모습]
이들은 3월 28일 2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수료증을 발급 받았으며,
4월4일에는 바리스타 2급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앞으로 꿈두레 도서관 개관과 함께 오픈하는 꿈두레 카페에서
바리스타로서의 첫 걸음을 시작할 것이라고 하며
이 카페를 잘 운영할 때에는 오산시에서도
계속하여 어르신들에 대한 여러 가지 교육을 실시하여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것이라고 담당자는 귀뜸하여 주었다.
모쪼록 이들이 바리스타로서의 자세를 잘 유지하여
꿈두레 카페가 오산시에서 가장 좋은 커피와 친절을 베푸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나는 아침마다 사랑, 행복, 감사가 들어있는 배낭을 멘다 - 전국노래자랑 오산시편 최우수상
지난 주말 오산천에서는
9년만에 찾아온 KBS전국노래자랑 공개녹화가 있었는데요.
끼와 개성이 넘치는 오산시민들이 예심을 거쳐
오산천 둔치에 마련된 야외스튜디오에서
노래와 춤으로 실력을 뽐냈답니다.
그 중에 남편의 손을 붙잡고 무대에 올라온 그 분!
최우수상을 수상한 그 분이 눈에 딱~ 띄었어요.
최우수상을 수상해서라 아니라~
남편의 손을 잡고 올라와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른
행복한 시각장애인 이었기 때문이지요.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자 그럼....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하여 오산시민 앞에서 노래하게 된 계기와
인생 2막에 도전하는 5월의 신부 김연희(45)씨를 만나 볼까요.
전국노래자랑 오산시편 녹화당일 먼 거리에서 잠깐 만나 본 그녀는
서울에서 야외 웨딩촬영을 끝내고 왔음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밝게 웃으며 인터뷰에 응해 주셨습니다.
동안 외모는 아름다웠고 1살 연하의 남편도
‘이마에 나 정말 착한남자’ 라고 써진 듯 훈남이었죠.
웨딩촬영 후 인터뷰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더욱 더 블링블링 참! 예쁘더라구요.
연희씨는 어렸을 때부터 오산천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등에 업혀 노래 부르는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별명이 ‘매미’였다고...
그래서 일까요...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오산시시각장애인협회 회장님과 지인들의 권유로 나가게 되었고
그 고마움에 진심을 담아 노래한 때문인지
감사하게도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됐다고 하네요.
인터뷰도중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필자의 초등학교 선배님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틴틴파이브 이동우씨의 경우와 같은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환을 가진 시각장애인이라고 합니다.
10대 후반 체육시간에 날아오는 배드민턴공이 안보이고
갈색과 빨간색이 구분이 안 되던 시점을 시작으로
30대에 실명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필자] 전국노래자랑 오산시편에서
'나 가거든'을 특별히 선곡한 이유가 있나요?
[연희씨] "저는 노래를 해도 가사가 좋은 노래를 하고 싶어요.
일단 리듬이 좋고 뭐해도 가사가 맘에 와 닿지 않으면
잘 불러지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이 노래는 내가 처음으로
나에게 불러주고 싶었던 노래에요."
“보통 노래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하는데 노래를 할 때도
내가 나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부르면 노래를 못해도
나를 위해 부르는 노래에는 진정성이 담기게 되거든요."
"살다보면 인생 자체가 슬프고 힘들 때 나만 힘든 게 아닌데 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을 때, 사랑을 주기 위해서
감사하며 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서 그 노래를 했어요"
[필자] 수상소감에서 가장 고마운 분이
남편보다 오산시민이라고 했는데 의외인데요?
[연희씨] "막상 생각지도 못했던 상을 받으니 너무 기쁘고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시민들을 다 사랑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들이 내 노래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 노래는 이유가 없는 노래가 아닐까요?
음...그리고...그리고 남편은 당연히 원래 사랑하는 사이구요… 하하하"
그녀는 상금을 타면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꿈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싶다며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이미 뼛속까지 사랑이 가득한 여자였다.
[필자] 오는 5월에 결혼을 하신다고요?
두분의 러브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연희씨] "실명 후 안 좋은 생각을 세 차례나 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추스리고
재활을 하려고 시각장애인협회를 나가고,
점자를 배우고, 혼자 보행하는 법을 배우고
그리고 먹고 살아야겠기에 맹인재활학교(경기수련원)
에서 국가자격증 안마사자격증을 배우러 멀리 수원까지 다녔어요."
"수원에 있는 맹인재활학교에 가려면 수원역에서 내려야하는데,
너무 복잡해한 정거장 전인 세류역에 내려 수련원 쪽으로 갔는데요.
후천적 맹인이라 길을 헤매는 모습을 보고
지금의 남편이 도와주러 온 게 우리 첫 만남이었죠"
"안쓰러운 분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선한 품성인 남편이
그날도 처음엔 단순히 도와주려는 맘으로 다가왔는데
저에게 광채가 났다고 하더라구요~ 하하하"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가면서 어디 가느냐? 무슨 일을 하냐? 어디에 사느냐?
이것저것 묻고 대답하면서 목소리에서 착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죠.
남편은 그날 이후 제가 생각이 나고 보고 싶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계획(?)했다고 해요"
"처음엔 낯선 사람의 호의가 무서웠는데 장소가 큰 길이고 덥석 잡지 않고
조심스레 다가와선 위험하니 정류장까지만 데려다 준다는
따듯한 맘이 감사하기만 했는데요 그저 우연인줄 알았던 반복된 만남,
그게 남편의 작전이었으며 우리 러브스토리의 시작이에요"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과의 결혼은 장난이 아니고 현실이기에
남편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자꾸 밀어냈지만
남편은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었죠
그러다 보니 저도 맘을 조금씩 열었던것 같아요"
남편 집에서는 처음에는 약간 충격을 받긴 했지만 반대는 안하셨고
지금은 오히려 많이 걱정해주시고 예뻐해 주신다고 하니
남편의 착하고 성실한 이유가 부모님한테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단다.
그런 예쁜 사랑이 결실을 맺어 5월에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고....
[필자] 시각장애인이라 힘든점이 있지 않나요?
[연희씨] "남의 편견에 크게 좌우되거나 상처받지 않아요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이 한 말이나 행동에 모욕감이 들면
한번 상처받고 그 사람을 미워하면 두 번의 상처를 받잖아요.
그래서 의연해 지려고 많이 노력하죠.
항상 열린마음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요"
하루가 주어지면 배낭을 싸는 기분으로 산다는 연희씨
하루가 주어진게 너무 행복하고, 하루하루 여행을 떠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에 충실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자는 마음!
언제 죽건 많은 사람에게 내 사랑을 주는 것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인지
개개인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며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그녀.
그녀와 대화중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사랑, 행복, 감사였다.
그 만큼 절실하고 그만큼 실천하고 싶은 그녀의 삶의 목표일 것이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에 나왔던 말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녀는 오늘도 사랑, 감사, 행복의 배낭을 메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전국노래자랑 오산시편 최우수상 수상 소감 인터뷰를 하며
근사한 강연을 들은 느낌, 내 마음에 힐링을 한 기분이다.
연희씨 언제나 행복하세요~~~~
-
드라마 정도전과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장군이 오산과 무슨 관련이?
요즘 “정도전”이라는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고 하여
나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 중에 혹시 오산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료를 조사 한바, 한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분은 바로 “이성계”의 의형제인 “이지란 장군” 이었다.
그렇다면 “이지란 장군”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여진족으로 1371년(공민왕 20) 부하를 이끌고 고려에 귀화해 북청에서 거주하며
이성계와 결의형제를 맺었다고 한다.
1380년(우왕 6)에는 이성계의 편장으로서 황산에서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무찔렀으며(황산대첩),
1385년에는 이성계의 휘하로 왜구를 함주에서 격파하였고, 1388년에는 위화도 회군에 참가해
1390년(공양왕 2) 밀직사가 되었다.
조선에 와서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 공훈으로 1392년 참찬문하부사에 오르고,
보조좌명 개국 일등공신으로 청해군에 봉해졌다.
1393년 경상도절제사로 왜구 방어를 담당해 동북면도안무사가 되어 갑주 · 공주의 성을 축조하였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워 정사공신 2등에 봉해지고,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 때에도 공을 세워 1401년 익대좌명공신 3등에 봉해졌다.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나자 그도 청해(北靑)에 은거하면서 남정 · 북벌에서 많은 살상을 한 것을
크게 뉘우쳐 불교에 귀의했다고 한다.
묘소는 함경남도 북청군 신북청읍 안곡리에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러한 분이 어떻게 오산과 연관이 있다는 것일까?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으나 “오산시 가수동 85-5번지”에 가면
아주 허름한 사당하나가 있는데 이 사당이 “이지란 장군 사당” 이라는 것이다.
(가수동 주공아파트 주변)
이 사당의 내력을 인터넷에서 살펴보면
영조 26년(1750) 9월 온궁에 가는 길에 사판을 받드는 곳이
수풀 속에 묻혀 있음을 보고 성조의 생각과 백의 위대한 공적을 잊을 수 없어 관원을 보내
치제(致祭)하라 하명하였고, 후대 임금들은 이곳에서 계속 치제하게 되었다 한다.
6·25 사변으로 파괴된 것을 지금의 사당자리를 마련하고 신축하였으며 1973년에 중수하였다고 하며
매년 음력 4월 10일 이지란 장군을, 음력 7월 10일은 부인 곡산 강씨를
각각 제향하여 받들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지식인 자료]
역사적으로 내려오고 있고 73년 이후 치제되었던 이곳은 현재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초평동(가수동이 현재 초평동으로 되어 있음)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문의했지만,
주민센터 직원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 중 나이가 지긋하신 직원이 가수동 주공아파트 주변에 사당이 하나 있다고 하여
주소를 확인하고 찾아가 보았는데 어느 한 곳 안내 표시가 없어 찾을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주공아파트 상가에 있는 분에게 “이지란 장군 사당”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니
이 또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어떤분께서 다가와 저기 다 쓰러져 가는 사당이 하나 있는데
혹시 그것이 아니냐고 하여 그분에게 그 곳을 알려 달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 다 쓰러져 가는 사당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 곳이 바로 “이지란 장군의 사당” 이었던 것이다.
[현재의 사당 정면]
[현재 사당 내부] [현재 사당 무너진 천정 모습]
[밖에서 본 사당 주변] [사당 주변의 나무]
E. H. Carr 의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 보면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하였다.
아무리 좋은 지나간 시간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소중이 여기지 않고 또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들은 우리에게 잊혀진 존재일 뿐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오산의 역사 또는 야사들을 찾아 다닐 욕심이 생겼다.
우리들의 주변을 돌아보고 지나간 소중한 우리들의 역사가
잊혀지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