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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민 대상 자전거 보험 가입 안내
2014년 5월 1일 부터 오산 시민 대상 자전거 보험을 실시 한다고 한다.
가입대상은 오산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분이면 누구나 가입 할 수 있으며
보험 기간중 전입자도 가능하다고 한다.
보장기간은 2014년 5월 1일 부터 2015년 4월 30일까지 1년으로하고
보험사는 '새마을 금고 보험사' 라고 한다.
자전거는 생각보다 많은 사고를 유발하고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은 건널목을 건널때 자전거를 타고 건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인도를 달려서도 안되고,
건널목을 건널때는 반드시 내려 끌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자전거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이 점에 대하여 각별히 조심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자전거 사고 서울시 통계를 보면
2010년 2,847건 이었으나 2012년 3,225건으로 13.27% 정도가 늘어났으며
자전거 사고는 애용하시는 분들이 많으면 많을 수 록 늘어 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봄, 가을과 출퇴근 시간대에 사고가 더 많이 일어 난다고 하니 참고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 오산시에서 오산시민을 대상으로 자전거 보험을 만들어
1년 동안 실시 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사고가 안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고가 났을 때 보상등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금년 오산시에서 실시하는 '자전거 보험 보장내용 및 보장금액'은 아래 표와 같다.
앞으로 자전거를 애용하시는 모든 오산 시민들이 이 보험을 이용하여
안전한 자전거 여행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입안내 : 오산시 건설도로과 031-8036-7702 / 새마을 금고 콜센타 1599-9010 /
새마을 금고 공제 사업팀 031-242-537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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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 부산동에 가면 현존하는 서낭이 있다
서낭의 위치 : 오산시 부산동 62-2
오산시 부산동에 가면 현존하는 서낭이 있다.
부산동을 취재 하고 돌아 서면서 나는 무언가 섭섭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아직 현존하는 그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지도를 펼지고 부산동 일대를 살펴 보다가
내가 서 있는 이곳 말고 뒷편에도 부산동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집과 집사이의 좁디 좁은 길을 차를 몰고 뒷편으로 가다가
어느 어귀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나는 아주 반가운 거목을 보게 된다.
그것은 부산동 서낭이라는 두 그루의 고목이었다.
서낭당은 옛날에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으로
명칭은 지방에 따라 선왕당 · 천왕당 · 국수당 · 국시당 등으로 불리며
한자로 표기하여 성황당(城隍堂)이라고도 한다.
서낭당은 보통 마을 어귀나 고개마루에 원뿔 모양으로 쌓은 돌무더기와
마을에서 신성시되는 나무(神樹) 또는 장승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형식은 5색 헝겊을 걸어놓은 서낭나무와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누석단(累石壇)이 결합된 것이 일반적이나
여기 부산동의 서낭은 나무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서낭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그 옛날 이 곳 부산동이라는 마을은
제대로 된 마을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이곳에 사낭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서낭은 롯데 오산 물류센타 및 인재 개발원 주변에 있어
그 주변이 한참 개발하고 있는 중이라 주변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으나
그래도 그곳에 그 옛날 서낭이 보존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매우 기쁘고 반가왔다.
나는 서낭 주변에서 한참을 서서 보고, 또 주변을 돌아 보며
그 옛날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서 행하던 모습들을 생각하면서,
이 부산동이 오산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 가치성이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지난것은 우리에게 추억과 향수와 또 다른 힘의 가치를 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통하여 우리들의 지나간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들려 주고
그 자녀들 또한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여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나간 이런 역사의 현장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되는 또 하나의 과제라 생각하고
나는 이 부산동 서낭이 앞으로도 계속 잘 보존되어 오산의 또 다른 역사를 알고
말해주는 일들이 일어 많이 일어 나기를 기대 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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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시 보건소 출생아 및 소아 폐렴구균 예방접종 안내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말라리아 균
예방접종은 감염병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합니다.
감염병(感染病) 또는 전염병(傳染病)이라고도 하는 병은
세균, 스피로헤타, 리케차, 바이러스, 진균, 기생충과 같은 여러 병원체에 의해
감염되어 발병하는 질환으로 병원체에 의한 감염은 음식의 섭취,
호흡에 의한 병원체의 흡입, 다른 사람과의 접촉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발생한다.
특히 여러 사람에게 전파되는 감염병을 특별히 전염병(傳染病)이라 한다. [워키백과 참조]
■ 접종별 보건소 예방접종 시간
[BCG]
- 요 일 : 매주 화, 목요일
- 대상군 : 생후 4주 이내
- 시 간 : 09:00 ~ 11:30
[BCG 외 예방 접종]
- 요 일 : 평일 계속
- 대상군
· 생후 12개월 이전 : 09:00 ~ 11:30
· 생후 12개월 이후 초등학생 : 09:00 ~ 15:00 (중식시간 12:00~13:00 제외)
· 중학생 : 09:00 ~ 16:00
· 성 인 : 09:00 ~ 17:00
■ 어린이 표준 예방 접종 일정
○ 결핵(BCG) : 횟수는 1회로 출생 1개월 이내
○ B형 감염(HepB) : 횟수는 3회
- 1차 : 출생 1개월 이내
- 2차 : 출생 1개월
- 3차 : 출생 6개월
○ 디프테리아(DTaP) : 횟수는 5회
- 1차 : 출생 2개월
- 2차 : 출생 4개월
- 3차 : 출생 6개월
- 4차 : 출생 15~16개월
- 5차 : 만4세~6세
○ 파상풍 및 백일해(Td/Tdap) : 횟수는 1회
디프테리아 5차 접종을 끝내고 만11~12세때 접종
○ 폴리오(IPV) : 횟수는 4회
- 1차 : 출생 2개월
- 2차 : 출생 4개월
- 3차 : 출생 6개월
- 4차 : 만4~6세
○ b형 헤모필루스 인플루앤자 : 회수는 4회
- 1차 : 출생 2개월
- 2차 : 출생 4개월
- 3차 : 출생 6개월
- 4차 : 생후 12~15개월
○ 폐렴 구균(PCV) : 횟수는 4회
- 1차 : 출생 2개월
- 2차 : 출생 4개월
- 3차 : 출생 6개월
- 4차 : 생후 12~15개월
○ 홍역, 유행성이하선영, 풍진 : 회수는 2회
- 1차 : 출생 12~15개월
- 2차 : 만4~6세
○ 수두(Var) : 횟수는 1회로 출생 12~15개월
○ 일본뇌염
- 사백신 : 5회 접종으로 출생 12개월 이후 36개월 이내 까지 3차 접종하고,
만6세 4차, 만12세 5차 접종을 한다.
- 생백신 : 2차 접종으로 출생 12개월에서 36개월 사이 접종
또한 5월 1일 부터는 “소아폐렴구균”을 생후 2개월에서 만5세 미만(59개월 이하) 아동에 대하여
아래 지정 의료기관에서 전액 국가 지원으로 무료 접종하며
2014년부터는 만 12세 어린이(2001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에 대하여는
국가 지정의료기관에서 상기 “어린이 표준 예방 접종” 백신에 대하여
무료 예방 접종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아직 예방 접종을 실시하지 아니한 신생아 및 어린이는
내용을 잘 검토 후 예방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오산시 보건소 예방접종실(8036-6061,6047)로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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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길흉을 점치던 이팝나무,운암로에서 만나요
오산에 와서 난생 처음 본 하얀 꽃 나무.
벚꽃은 분명 아닌데, 처음 본 꽃이라 이름을 알 수 없었던 나무.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된 이름은 "이팝나무"였어요.
외국어가 아닌데 왠지 이국적으로 들리는 이름이었지요.
해마다 목련이며 산수유, 개나리, 벚꽃 등 봄을 알리는 꽃들이
100m달리기를 하듯 숨차게 휘몰아 치고 지나가면
그제서야 제 얼굴을 내미는 하얀 꽃 나무가 바로 이팝나무인데요.
봄을 알리는 전령사는 아니지만, 봄과 여름을 잇는 싱그러운 꽃이랍니다.
요즘 운암5단지부터 시청을 걸쳐 운암 1단지까지의 운암로를 오시면
흐드러진 이팝나무를 볼 수 있는데요.
이번 연휴에 함안에 다녀왔는데, 함안에서도 이팝나무 가로수길을 볼 수 있었어요.
오산의 이팝나무와 다른가요? 같나요?
백과 사전에는 이팝나무 이름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이팝나무라는 이름의 연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론이 있다.
첫째는 입하(立夏) 무렵에 꽃이 피므로 입하가 이팝으로 변음하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꽃이 만발하면 벼농사가 잘 되어 쌀밥을 먹게 되는 데서 이팝
(이밥, 즉 쌀밥)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며,
셋째는 꽃이 필 때는 나무가 흰 꽃으로 덮여서 쌀밥을 연상시키므로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팝나무(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사전적 연유를 보면
1. 입하 무렵에 피기 때문에
2. 꽃이 만발하면 이밥(쌀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3. 나무에 덮힌 흰 꽃이 쌀밥을 연상시키므로
인데요.
하지만, 이팝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다른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려고 해요.
《문화재사랑》(문화재청 발간)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나무나 꽃과 연관된 슬픈 전설이 많이 있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꽃에 며느리의 한이 서려있군요...
그런데 이팝나무 꽃은 자세히 보면 정말 쌀밥같이 생겼어요.
천연기념물인 이팝나무도 있는데요.
순천 평중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6호), 고창 중산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183호),
광양읍수와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235호),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군(천연기념물 제214호),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234호), 김해 신천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185호),
김해 천곡리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07호) 등지에 있다고 합니다.
"천연기념물 이팝나무가 살고 있는 곳은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 지역이다.
이처럼 천연기념물 이팝나무가 모두 남쪽 지역에 살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지역의 이팝나무는 농사의 지표였다.
이곳 사람들은 이팝나무의 꽃을 통해 농사의 흉풍을 점쳤다.
꽃이 많이 피면 풍년, 적게 피면 흉년이라 생각했다.
이 같은 풍속은 물이 많은 곳에서 이팝나무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월간 문화재 사랑> 4월호)
풍성한 이팝나무 꽃처럼 모두 행복하고, 올 해 우리 대한민국에 더이상 슬픈 비보가 전해지지 않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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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의 발생지 부산동을 찾아
부산동은 현재 오산시 중앙동으로 편입된곳으로 오산의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의 형태 보다는 어느 시골의 한 농촌을 연상케하는 마을 형태를 갖추고 있다.
[부산동 입구의 모습]
일부 공장 및 창고등이 들어와 있으나 도로 및 마을의 모습은 옛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어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매우 정감이 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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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의 시작은 문헌상 마한, 진한, 변한 등의 삼한시대로부터 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중 마한은 약 54개의 부족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지금의 오산시와 수원시, 화성군이 속해 있었던 수국은 모수국, 원양국, 상외국으로
이 중에서 오산은 모수국(현재의 오산, 태안, 정남, 동탄, 양감, 향남, 봉담, 매송면 일대)에
위치하였다고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모수국은 삼국시대 백제의 영토였으나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 정책에 의하여
고구려에 편입되면서 상외국과 함께 매홀군(買忽郡)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삼국사기 제24, 백제본기 제2 고이왕 5년(AD 238년) 2월조에 의하면
‘왕은 부산에서 사냥을 하고 50일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부산을 진위(振威)부산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진위현 전의 부산현은 오늘날의 오산시 부산동 부근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오산에서 가장 오래된 부산동으로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부산이라는 기록이 처음 나오는데 시대에 따라 부산현 · 진위현 · 평택현 등으로 바뀌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수원군 청호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때 수원군 성호면 관할을 거쳐
1960년 화성군 오산읍 관할이되었다가 1989년 오산이 시로 승격하면서 지금의 동이 되었고
행정동은 중앙동과 대원동 일부를 관할한다 지금은 중앙동으로 되어 있다.
[두산백과 및 오산 문화원 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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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동 561번지에는 ‘한두유’ 및 ‘한영휘’의 묘가 있었다.
‘한두유“는 숙종의 비인 인경황후의 외숙부로 1632 ~ 1679년까지 살았던 분으로
진안현금 및 이천수령 등을 지냈으며 묘 주변에는 묘표, 문인석 1쌍,
양주석 1쌍, 상석, 향로석, 혼유석 등이 있었고
‘한영휘’는 1661 ~ 1718까지 살았던 분으로 조선중기에 사헌부지평, 성천부사 등을
역임하였던 문신으로 상석 및 향로석, 망주석 등이 있었으나
이 두 묘는 현재 모두 철거 되어 밭으로 변해 있었다.
[두 묘 자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부산동 561번지 현재의 모습]
부산동은 아직도 옛 집들이 여기 저기 있었고 고목들도 가끔씩 눈에 띄고 있었으며
아직도 자연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으나
오산 발생지 역사의 현장은 어느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어 씁씁한 마음을 갖게 하였다.
나는 부산동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지금 오산의 모습이 먼 훗날 그들의 생활과
별 관계가 없다고 지금의 흔적들이 또 지워지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를 하며
지금의 부산동의 모습을 자꾸 뒤돌아 보게 되었다.
역사는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 하여 주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 시절의 이야기, 그 시절의 모습들이 그곳에 잔존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미래를 구상하며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산의 발생지인 부산동은 지금 우리들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을까?
나는 오산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지나간 시간들을 다시 한번 이야기로 만들어 낼수는 없는 것인가를 생각하여 보았고
앞으로는 지나간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작은 것이라도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또 다른 오산의 지나간 시간들을 찾기 위하여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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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두레 도서관 독서캠핑장에 다녀왔어요~
꿈두레 도서관에서는 "온가족이 밤을 세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부터 기자와 함께 독서캠핑장을 체험해보자.
우선, 독서 캠핑장을 이용하려면 오산시민이어야 하고 도서관회원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1~2명, 자녀1~4명이내로 초등생 ~ 중학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어야 한다.
이용 전에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하는데,
매월 1일 오전 9시부터 오산시도서관 홈페이지(www.osanlibrary.go.kr)에서 선착순으로 접수를 받는다.
시민들에게 혜택을 골고루 주고자 1인당 연2회이내로 사용가능하니 참고하자.
이용요금은 무료이지만 조건이 하나 있다.
퇴소시 자녀와 함께 작성한 독서 소감문 또는 독서캠핑 소감문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다.
준비물도 있는데, 신분증과 도서관회원증은 필수이고,
필요에 따라 텐트, 취사도구, 세면도구, 침구 등은 알아서 지참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최대한 편하게 체험하기 위해 저녘을 집에서 먹고,
간단한 간식만 챙겨서 오후 7시 쯤 입소를 했다.
참고로 캠핑장은 4시~8시 사이에 자유롭게 입소하면 된다.
트렁크에 짐이 꽉 차 있는데, 사실 별거 없다.
잠옷, 세면도구 그리고 약간의 간식 (과일)이 전부다.
그런데, 침낭이 없는 관계루다가 우리 네식구의 잠자리를 위해
요 2장, 이불 2개, 배게 4개를 챙겨넣다보니 짐이 매우 많아 보인다.
사진에 냄비가 보이는데, 버너도 없이 도대체 왜 싸왔는지, 미스테리다. ;;
혹시나 추울까봐 겨울 이불을 챙겨오는 바람에 은근히 부피가 커서,
이렇게 아이들이 보따리를 하나씩을 안고왔다.
이불 싸는데는 역시 보자기가 최고다.
그런데, 막상 숙소 바닥이 우리집보다 더 따뜻했다.
이불은 가벼운 것을 가져오길 권한다.
캠핑장에 입소하기 전에 도서관 1층 안내데스크에 들러서,
출석체크를 하고 방키부터 받아야 한다.
꿈두레 안내 데스크에서 근무하시는 분인데, 매우 친절하시다.
도서관 회원등을 맡긴 후, 독서캠핑장 이용안내 서류철을 받아 들고 드디어 숙소로 향했다.
이렇게 입소식을 마쳤으면 이제 캠핑장으로 올라가면 된다.
짐을 푸르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와서 오후 8시 즘부터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숙소 내부에는 이렇게 책읽기에 딱 좋은 작은 상도 마련되어 있다.
벽에는 콘센트가 딱 하나있는데, 바닥을 데워주는 난방코드가 이미 꼽혀있다.
그래서, 만약 충전이라던가 노트북을 사용하려면 난방코드를 뽑고 사용해야한다.
다행히, 날이 춥지않아 잠깐씩 교대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었다.
책을 읽기 위한 목적으로 온것이니, 전자기기는 왠만하면 가져오지 않는것이 낫겠다.
저녘 9시를 넘기자 슬슬 배가 고파졌다.
미리 준비해온 과일과 빵 과자등으로 간단히 끝내려 했지만, 아이들이 라면을 먹자고 난리다.
라면도 설거지가 필요없는 컵라면으로 준비했다.
혹시나 해서, 도서관 정수기에서 컵라면 물좀 부어도 되냐고 소심하게 전화를 하자
도서관이 문을 닫는 10시 이전까지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9시 50분에 물을 부어서 아슬아슬 하게 라면을 먹었다.
간식을 다 먹고나서 다시 책읽기에 들어갔다.
집에서는 소파에 앉아 TV를 볼 시간인데, 딱히 할게 없으니
아이들은 별 불평없이 따뜻한 바닥에 배를 깔고 계속 책을 읽기시작했다.
이렇게 책을 읽다가 밤 12시가 되자 아이들이 졸립다고 난리다.
나가서 간단히 씻고와서, 서둘러 이불을 깔았다.
5분도 안되서 두 녀석 모두 완전히 곯아 떨어졌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숙소 문을 잠근후, 화장실도 갈겸 우리부부는 밤 산책에 나섰다.
밤 10시가 지나면 1층 안내데스크에서 화장실 키를 받아가지고,
도서관 아래에 공원에 마련된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이점이 조금 불편했다.
지나는 길에 보니 숙소의 내부가 이렇게 훤히 들여다 보였다.
다음에 올때는 신문지와 스카치 테이프를 준비해서 좀 가려줘야 겠다.
하룻 밤을 보내고, 드디어 날이 밝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큰아이와 둘이서 소감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불을 개고, 짐을 몽땅 꾸려서, 집으로 가려고 문을 열었더니,
새들도 지저귀고 햇볕도 쨍~
막상 가려니 놀이터에서도 조금 놀다 갈껄..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엔 간단히 아침밥을 준비해와서 산책도 하고 놀이터도 들러서 놀다 가야겠다.
마지막으로, 1층 안내데스크에 키와 소감록을 제출 한 후,
독서회원증을 돌려받으면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
독서캠핑장은 다른 캠핑장과 달리 조용하게 책만 읽을 수 있어서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이들도 내집 안마당에 도서관이 있는 것처럼 스스로 책을 빌려와서 읽는 것이 즐거웠는지
몇 번을 왔다갔다 해도 지치지도 않고 몇시간을 책만 읽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둘째가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해서,
빌려온 책들을 다 읽어주느라 내 책은 빌릴 엄두도 못낸 것이다.
올 여름안으로 한글을 떼고, 가을쯤에는 나도 책 좀 읽으러 다시 와봐야 겠다.
도서관에서의 1박~
가족끼리 밤늦도록 오붓하게 책을 읽는 재미~
상상이상이다.
많은 오산시민들이 독서캠핑장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많이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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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합니다" -오산청소년 합창단 세월호 추모공연 오산청소년 합창단 세월호 추모공연 연일이어지는 아픔속에서 가슴이 먹먹해져오는 슬픔. 이 비통한 심정을 오산청소년 합창단은 5월5일~6일 4회에 걸쳐 세월호 추모공연을 했다. 이 날 공연은 추모공연이기도 하지만 오산문화예술회관의 10주년 개관기념의 무대이기도 했다. 오산문화예술회관 개관기념을 시작으로 오페라의 불모지인 오산에서 아이들과 뒹굴고 노래하고 또 성장한지 벌써 10년.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대학교 2학년의 전공자가 되었다. 10년동안 음악을 통해 단원들의 감성개발, 영어수준향상, 표현력개발등 종합예술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미래 예술계를 이끌어 갈 전공자들의 실력증진에도 많은 이바지를 했다. 이 계기로 오산의 청소년 문화예술의 성장에도 큰 밑거름을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럼 오산시청소년합창단의 대표작인 ‘굴뚝청소부 샘’ 현장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애도합니다” 합창단의 학부모들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노란리본을 손수 만들어 관객들에게 나누어 드렸다. 단원들 역시 리본을 달고 관객들과 함께 아픔을 노래했다. 짤막한 동영상과 함께 이은순단장님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 아픔을 노래로 승화시키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보는 우리들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10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합창단을 지키고 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동안의 어떤 작품과 오페라와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관객들에게 잠깐동안 설명이 있었다. 아직은 학생들이지만 프로못지않게 열창을 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오페라라는 장르가 무엇인지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아이들의 노래가 극장안에 울렸다. 지휘자도 없이 조그만 입으로 열심히 부르는 아이들에게 관객들은 큰박수로 답례를 했다. 잠시후 오페라를 사랑하는 초등학교 고학년들의 ‘도레미송’이 이어졌다. 함께 따라 부르면서 세월호의 아픔을 잠시나마 잊은채 잔잔한 미소를 지을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오페라가 진행되었다. 그간의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짐작이 가는 공연이었다. 공연의 내용처럼 굴뚝에서 나와 자유의 몸이 되는 샘. 어리지만 친구의 어려운 상황을 보면서 구해주고자 했던 착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 왜 우리에겐 그런 용기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세월호에 갇혀서 젊음을 피워보지도 못한 학생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 아픔을 뒤로 하고 공연은 끝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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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모두 힐링할 수 있는 맑음터 공원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조용한 시간을 한 번 가져 보고자 이른 아침 일찍 맑음터 공원을 찾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하여
조용히 산책하며 생각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되어 매우 좋았다.
맑음터 공원은 오산시 생태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공원으로
총면적은 52,474㎡로 전망타워계와 주차타워, 배드민턴장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공원 안과 주변에는 인공 암벽, 바닥분수, 생태연못 등 113종의 여러 시설들과
노상주차장, 인라인스케이트장, 농구장, 족구장 등의 체육 시설과
다목적 환경으로 조성된 종합 공원이었다.
맑음터 공원을 말로만 들었지 내가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공원 입구에서부터 매우 기분이 좋았다.
공원의 입구는 여러 곳이 있지만 전망대 쪽 초입으로 들어가면
공원의 외각 일부를 감싸고 있는 둥근 아치 모양의 긴 다리는
공원에 들어서는 나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공원에 들어서면 처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확트인 길과 넓은 공간
그리고 주변 이곳저곳 자리 잡고 있는 재활용의 작품들이었다.
공원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공존 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어
어디를 가던지 어린아이들도 쉽게 놀이터에 접근할 수 있었고,
어른들 또한 옛 추억들을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형물들이 많이 있었다.
옆에 설치되어 있는 여러 가지 모형으로 보이는 거울은 나를 어린세상으로 돌아가게 하였고,
그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그네는 그 시절 동구 밖 큰 나무 아래서 그네타며 놀던 시간들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리고 주변에 흐르는 실개천은 도시에서 찌들어 진 마음을 달래 주고 있었고,
여기 저기 설치되어 있는 오솔길과 푸른 잔디밭들은 아름다운 세상의 편안함을 간직하게 하여 주고 있었다.
한참을 산책하다 내 눈에 들어 온 냇가의 산책로는 지나간 고요한 시간들을 생각하게 하였고,
황새교 옆 커다란 나무는 어린 시절 냇가에서 고기 잡고 물장구치며 놀던 시절들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리고 나타난 그 옛날 시골집 풍경은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 속에서 자랑스럽게 살고 있는 우리 가족들과
돌아가신 부모님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였다.
좀 더 지나가니 넓은 들판에 펼쳐진 억새풀 오솔길은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서울에서 공부 하다 방학하면 부모님이 계신 시골에
기타 메고 내려가 예쁜 여학생 후배와 노래 부르면 지내던 시절도 생각나게 하는 등
정말로 아름다운 환경들이 여기 저기 오밀 조밀하게 조성되어 있어
석가탄신일 아침에 나의 마음을 힐링하게 만들어 주는 시간을 갖게 하였다.
나는 맑음터 공원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오늘 아침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맑음터 공원을 찾아와 나와 같이 지나간 시간들과
지금의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들을 만들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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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날 보적사에서 비빔밥 먹고 독산성 둘레길 돌고
오늘은 연휴의 마지막날.
아이들은 친구들과 영화보러 가고.
혼자남은 저는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물병들고 무조건 집을 나섭니다.
걷다보니 어느덧 여계산을 오릅니다.
대부분 가족, 친구들과 함께지만 저만 혼자서 쓸쓸하게...엉엉
하지만 철쭉이 한창 꽃을 피어 반겨주니 그리 심심하지는 않았답니다.
처음에는 여계산 정상까지만 올라가보자는 심산이였는데...
휴게소에서 세마대 둘레길을 바라보니 손짓하며 부르는듯 보여
얼른 독산성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ㅎㅎ
동탄어린이 천문대를 지나오는데 주차장을 방불케할만큼 차가 많이 세워져 있더군요.
조금 이른점심이긴 하지만, '일찍 식사하러 오셨구나' 생각했는데
경찰아저씨가 차량통제를 하십니다.
'아참, 오늘이 부처님오신날이지' 어젯밤까지도 얘기해 놓고 깜박깜박합니다.
오늘은 불기 2558년 부처님오신날 입니다.
지금부터 2600년전 인도의 북쪽 히말라야산 기슭 카필라바스투라고 불리는
작은 나라에 왕자로 태어나셨다죠!!!
벌써부터 많은 분들이 걸어서 올라가시고
몸이 불편하시거나,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족은 셔틀차량을 기다립니다.
엄마와 이모따라서 칭얼거리지도 않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
행사차량에 먼지가 날리자, 얼굴을 약간 찡그리더니 금세 성큼성큼 오릅니다.
꽃 공양을 하려고 장미를 들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선혜라는 이름으로 수행하고 있을때,
어느 날 보광부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꽃을 공양하기로 마음먹고 구하러 다녔으나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나라의 왕이 여래께 꽃을 공양하기 위해 모두 사들이고 팔고 사지 못하게 했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구리라는 선녀가 꽃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선혜 행자는 "여래를 만나 뵙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니 모처럼 오시는
여래계 꽃 공양을 오리고 공덕을 짓고자 하니 제발 꽃을 제게 파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구리선녀는 선혜 행자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하여
선혜 행자에게 부처님께 다섯 송이의 꽃을 나눠주고
자신의 몫으로 두 송이를 대신 공양할 것을 부탁하였답니다.
선혜선인(석가모니)과 구리선녀의 부부인연이야기로 현재 불교 '화혼식'에서
신랑이 다섯 송이의 꽃과 신부가 두 송이의 꽃을
부처님 전에 올리게 된 것은 위와 같은 유래에서 전해진다고 한다.
지난주에 여주 신륵사에 갔을때도 유난히 꽃이 많이 있어서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겠더라구요.
백제시대에 창건된 사찰 보적사가 많은 분들로 인산인해입니다.
세월호의 아픔으로 조용하지만 경건한 가운데 행사가 진행됐습니다.
부처님 말씀 듣고자 잠시 앉았는데,
옆을 쳐다보니 낯익은 할머니...
"어.어... 안녕하세요?"
"나를 기억하겠수?"
"당연하죠. 저희 병원에 오래다니셨잖아요." 하면서 이름도 기억해내자,
아이고 반갑네 하면서 제손을 덥석 잡아주십니다.
필자가 병원에서 근무를 하는데,
그곳에 꽤 오랫동안 허리가 아프다며 내원을 하셨는데, 고맙게 저를 기억하고 계시더라구요.
보적사를 찾은분들께 점심식사를 대접하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십니다.
시원한 된장국에다 생생한 야채가 살아있는 비빔밥입니다.
긴행렬 보이시나요.
조용하게 순서를 기다리십니다.
부모님과 함께 오셔서
비빔밥을 쓱싹쓱싹 비벼드시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십니다.
수원에서 오셨다는 아주머니가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침이 꼴깍꼴깍 넘어갑니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아서 독산성 주변이 선명하게 더 잘 보입니다.
독산성 성곽을 둘러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시원하게 탁트인 오산시내와 화성일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와
눈이 호사를 누립니다.
더불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뭔가가 뻥 뚫립니다.
이래서 등산하는 분들이 정상을 오르는듯 싶습니다.
산아래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것들이 산에 오르면서
정상에 섰을때의 희열이 우리를 다시 산으로 안내하는거겠죠.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온양온천에 행차했다가 환궁 하던 중
장마때문에 독산성에서 하루를 묵고 백성들에게 몇가지 이야기를 남기고 갔습니다.
그로부터 30년 뒤 풍수지리의 문제로 독산성을 없애야 한다는 논란이 일어났지만
효심이 깊었던 정조는 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해
오히려 독산성을 더 고쳐 쌓도록 명하여 지금의 독산성의 모습이 갖춰졌답니다.
영조-사도세자-정조 3대가 찾은 안내판을 읽는데,
풍수지리의 문제로 독산성이 없어졌다면
우리가 오늘날 이곳을 오르지도 못했을텐데..... 하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지난주에 역린의 영화도 정조대왕 이야기로 우리가 사는 오산,
화성이 정조대왕의 효심이 살아 숨쉬는곳이라 생각하니 이곳에 사는게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오늘 보적사에서의 맛있는 비빔밥과 안면있는 할머니들도 만나고,
부처님이 이땅에 오신 참뜻을 오늘날에 되새길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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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 5.30~31 사전투표 할 수 있어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 왔어요.
늘 그렇듯 선거일은 수요일이고,
6.6 현충일은 금요일이 되어 샌드위치 휴일이 되어버렸죠.
시민의 정치참여도, 투표권 행사도 중요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생업과 휴식에 시간을 쏟느라 투표는 뒷전으로 미루기도 합니다.
그렇다보니, 지난번인 5회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54.5%에 불과했었다고 해요.이번에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있는 날이 3일이 되었어요.
5/30, 31, 6/4 이렇게요.
바로 선거 당일일 6월 4일에 투표참여가 힘든 분을 위한 "사전투표"가 가능해진 것인데요.예전에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을 위한 부재자투표가 있었지요?
넓게 보면 미리 신청하지 않고도 관할 지역의 읍, 면, 동사무소에
혹은 타지역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자유롭게 투표참여가 가능해졌습니다.
자신의 주소지에서 참여하는 사람을 '관내선거인',
주소지가 아닌 곳에서 참여하는 사람을 '관외선거인'이라고 부릅니다.투표소입구에 가면 안내도우미가 '관내선거인'인지, '관외선거인'인지에 따라 안내를 도와줍니다.
아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천절하게 설명해주는 참여절차입니다.^^
"이와 같이 투표소 입구에서 ‘관내선거인’과 ‘관외선거인’을 구분받은 유권자는
각각의 투표장소로 이동하여
①신분증명서(주민등록증, 여권·운전면허증, 공무원증 등)를 제시하고
통합선거인명부를 통해 본인 여부를 확인받습니다.
②손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입력합니다.③투표용지발급기를 통해 투표용지를 받습니다.
(관외선거인은 투표용지와 주소라벨이 부착된 회송용봉투를 함께 받습니다.)④기표소에 들어가 기표한 후 투표지를 보이지 않게 접어 투표함에 넣습니다.
(관외선거인은 기표한 투표지를 회송용봉투에 넣은 후 봉함하고 회송용봉투를 투표함에 넣습니다.)통합선거인명부가 사용된다는 사실 외에는 관내선거인의 경우
선거일날 실시하는 일반 투표절차와 별반 다를게 없는데요?
관외선거인의 경우는 과거 부재자투표와 투표방식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관내선거인의 투표절차와는 달리 투표지가 개표를 위해 자신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선관위로 우편 송부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한 회송용봉투가 별도로 지급됩니다."이렇게하면 사전투표 끝~~~^^사전투표는 5월 30일(금), 31일(토) 오전 06시~ 오후6시이며,
가까운 사전투표소는 아래 링크에서 찾아보면 됩니다.※ 사전투표소 찾기 http://minfo.nec.go.kr/infomobile/info.polls.do?sg_id=20140604&gbn=butu시.공간적 어려움으로 투표에 참여하기 힘든 분을 위한
"사전투표제" 를 적극 활용해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