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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두레도서관>;책읽는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 : 동화작가 초청 자녀독서교육 특강
책 읽는 아이를 만들려면 부모가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
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듣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행동을 보고 자란다
라는 말도 자녀교육에 관한 명구이고요.
그럼에도 자녀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기 힘들기 때문에
"자녀교육"이라는 것이 모든 부모들이 가진 고민의 키워드일꺼에요.
여러 교육 중 중요성에서 손꼽히는 것이 독서교육일텐데요.
'어떻게 하면 가족들이 다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아이들의 정서를 위한 책읽기는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일까?'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마련한 특강이 있습니다.
꿈두레 도서관에서 열리고요.
제목은... 동화작가 초청 자녀 독서교육 특강
: 책읽는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 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특강일정과 강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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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달 행사의 마무~으리, 토요일에 도서관
9월은 독서의 달입니다.
독서의 달이라, 도서관에서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는데요.
진작에 이 소식을 전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살~짝 듭니다... ^^;;
여러 다양한 행사가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
일명하야 도서관 "연체자특사"라는
연체자의 대출정지기한을 풀어주는 이벤트입니다.
혹시 장기 연체로 인한 대출정지 때문에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도서관 회원분이 있으시면
걱정말고 지금 바로! 도서관으로
"책을 갖고" 와주세요, 뿌잉뿌잉~~~^^*
중앙도서관 로비 한 켠에 마련된 라바 포토존
"내가 만약 도서관장이라면" 코너는 인기 짱이네요.
첫 방문 때는 이렇게 휑 했었거든요.
그 다음주에 가니 이렇게 꽉 찼어요.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읽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의견이에요.
중고서점 아이디어.
개인적으로 중고서점을 좋아해서 그런가봐요... ^^
6개 도서관에서 이미 많은 행사가 진행되었는데요.
실망하셨나요???
그래도 실망은 아직 이르답니다.
이번주 토요일인 9월 27일에 마지막 행사가 남았거든요.
아래의 표를 참조로 해서 독서의 달의 마지막 행사에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시길 바래요
문의 전화는 여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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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예능발표대회 - 땀과 열정의 현장 속으로
지난 주 목요일인 9월 18일,
오산문화예술회관의 대공연장과 소공연장에서는
오산, 화성지역의 초, 중, 고등 학생들의 예능 중 음악 발표대회가 열렸습니다.
화성오산교육지원청 주최로 열린 이번 대회에는 80 여 개 학교에서
합창, 중창, 리코더 합주, 기악 ·관현악 · 관악 합주를 비롯
기악 · 현악 · 관악 · 관현악 중주 부문의 끼를 마음껏 뽐냈습니다.
특히 이번 대회는 개인별 대회가 아닌 단체 발표 대회여서 더 뜻깊었습니다.
오전 9:30부터 시작된 대회로
오산문화예술회관의 앞 뒷마당 곳곳이 작은 발표회장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학교별로 모여서 악기도 맞춰보고
서로의 목소리도 맞추느라 줄을 맞추더라고요.
그 모습 하나 하나가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럽던지......
아이들의 발표가 시작될 소공연장 무대입니다.
대공연장에는 합창과 합주가 펼쳐졌으나, 제가 못가서 사진에 담지 못했네요.
서로 호흡을 맞추어 연습하며 갈고 닦았던 기량을 발휘하는 모습이나
큰 무대에서 떨지 않고 연주하는 모습들이 참 감동이었습니다.
다양한 연주 모습, 함께 보실까요?
운천초의 현악 중주입니다.
운천중의 기악중주였는데요.
예술회관 앞 마당에서 소리를 맞추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신초의 연주인데, 핸드차임이라는 악기로 연주했습니다..
저는 이 악기를 처음 봤어요.
악기 이름도 대회 이후에 검색해서 알게 되었네요. ^^;;
마지막 사진은 세교고등학교의 학생들인데요.
두 친구들이 서로 호흡을 척척 맞추어 튕기는 기타 선율에
앉아서 듣는 이들도 저절로 손가락기 까딱거려지더라고요.
너무 멋졌어요~~~^^*
학생들이 공부에만 열중할 것 같지만,
이렇게 다양한 예능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흐뭇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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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과 영이별을 해야만 했던 정순왕후의 사후 이야기 - 영영이별 영이별
9월 12일 금요일.
막히는 퇴근길을 서둘러 오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조선시대 비운의 여인 정순왕후의 이야기를 담은
'2014 박정자의 영영이별 영이별'을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났다.
영영이별 영이별은 조선의 여섯 번째 왕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이승을 떠나면서
이승에서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지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의 내용을
라이브음악, 영상 등과 함께 감성적으로 그려낸 낭독 콘서트이다.
죽음에서 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묵직했다.
거기에 박정자 선생님의 위엄있는 목소리,
정순왕후와 같은 모습의 새하얀 저고리,
간간히 비춰지는 흑백의 영상과 사운드,
해금과 기타의 구슬픈 선율이 더해졌다.
수양대군에 의해 단종의 힘을 꺽기위해
13살 어린나니에 중전이 되어야 했던 송씨.
단종! 그의 비 정순왕후 송씨 그녀의 이야기
궁궐의 암투속에 짧은 인연,
긴 그리움을 가슴에 간직한 정순왕후의 죽음.
해금과 기타의 라이브 음악,
영상과 사운드가 가미된 최치림의 연출이 돋보인 낭독 콘서트.
죽음 뒤 삶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
박정자 선생님의 낭독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단종에 대한 그리움. 세조에 대한 분노
(격분, 찢어죽이겠다는 다짐이 아닌 살아남는것,
그것이 그를 죄책감에 빠지게 할수 있는 복수라고 생각했던 그녀),
삶에 대한 처절한 현실이 박정자 선생님의 목소리로 하나둘 살아났다.
영영이별 영이별은 김별아의 동명의 장편소설을
전옥랑이 각색한 작품으로
유배를 가는 단종과 청계천 영도교에서
영원히 헤어진 정순왕후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세상을 떠난 정순왕후의 혼백이 죽는 날까지 침묵해야 했던
기구하고 애달픈 사연을 죽어서야 단종에게 털어놓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박정자 선생님의 구슬픈 목소리와 해금 가락이
한데 어우러져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당신, 영원한 나의 님! 기다리세요.
내가 곧 갑니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스크린에 보여지는 가례를 올리는 정순왕후의 모습 앞에
박정자 선생님의 모습이 겹쳐지고 무대 뒤로 스스르 걸음을 옮기는
선생님의 움직임이 두 눈을 사로 잡았다.
역사적인 사실로만 받아들였던 단종의 폐위와 죽음.
그 이야기가 영영이별 영이별을 통해 역사가 아닌 나와 같은 인간,
세월호로 목숨을 잃은 그 어린 아이들과 같은 어린 소년,
소녀의 이야기로 내 가슴속에 새겨졌다.
단종 - 정치적 야심에의해 희생된 비운의 소년국왕
조선의 제6대 국왕인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한국사 전체에서
가장 비극적인 운명의 국왕이었다고 말할 만하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첨예한 권력 투쟁은 대부분 건국 초기에 빈발한다.
조선이 개창된 지 꼭 60년 만에 11세의 어린 나이로 등극한 국왕은
권력의 공백이 빚어낸 투쟁의 희생양이 되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5962
자규시 - 단종이 유배지에서 지은 시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떠난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 푸른 산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새 소리 끊긴 새벽 멧부리에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하소연 어이 못 듣고
어찌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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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술피리를 생생하게 감상해보다! [오산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즐거운 음악이었죠. 모차르트를 배웠어요.
그 마술피리 나도 갖고 싶어요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 준다는
오페라에 나오는 마술피리~~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가 오늘의 진행자입니다.
입구에서 악보를 하나씩 받았는데요.
감상하기 전에 아이들이 부를수 있도록 편곡한 마술피리를 불러봅니다.
마술피리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로
유명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지막 작품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네요.
밤의 여왕의 시녀들로 마법을 부립니다.
타미노 왕자가 괴물과 싸우고 있는 중에 왕자를 도와줍니다.
멋진 왕자님을 보자
시녀들은 "내꺼라고", "안돼, 내꺼야"하며 서로 싸웁니다.
왕자님은 전혀 딴마음인데요 ㅎㅎ
사람인지 새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생김새의 새잡이꾼 파파게노
얄밉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떠버리죠.
더군다나 오늘은 친구들에게 사탕도 선물해 주었답니다.
드디어 밤의 여왕이 등장했네요.
온 세계를 어둠이 지배하는 밤의 왕국으로 만들려는
야욕으로 가득찬 여왕이지요.
하지만 밤의 여왕 아리아를 들으니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여왕입니다.
마술피리와 요술방울을 들고서
파미나 공주를 구하러 갑니다.
밤의 여왕의 딸이지만
어머니와는 달리 착한 마음을 가졌으며,
결국 정의의 편에 서죠.
자라스트로~~
신을 섬기고 평화를 사랑하는 대제사장으로,
밤의 여왕에 맞서싸우죠.
타미노가 파미나와 함께 자라스트로의 성에 살려면
세가지 시험(침묵수행, 물의 시험, 불의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파파게노와 함께 마술피리와 요술방울을 이용해 모두 통과합니다.
파파게노는 한번도 연애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짝을 간절히 찾고 있는데요.
오늘 드디어 이뤄진 것 같죠.
파파게노와 파파게나가 다정하게 아리아를 부르고 있으니 말이죠.
공연관람후에는 시작전에 불렀던 마술피리를
다시한번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힘차게 부릅니다.
오늘 공연을 위해 멀리서 한달음에 달려와 주시고
또 오산친구들 눈높이에 맞추어 노래도 들려주시고
아낌없이 실력발휘를 해주신
포천 오페라 단원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친구들도 '와아~'하며, 끊임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무대 멀리서 보는것과 달리 가까운 곳에서 보니
느낌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이해인, 달빛기도-한가위에중에서)
공연을 보면서 하늘보다
저의 마음에도 친구들 마음에도
오늘만큼은 감성의 달이 떴습니다.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신
2014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팀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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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함께했던 2014오산시민의 날!
온 가족이 함께해요!
제26회 오산 시민의 날!
시민가을 운동회. 음식문화축제. 나눔장터가
9. 13(토)에 많은 시민들의 참여로 개최되었습니다.
늦여름의 더위를 떨치며
운동장 전체가 한증막에 온것마냥 착각이 들정도로
뜨끈뜨끈~~!!
땀이 주르르륵~~!!
한 낮의 뙤약볕을 피해
조금이라도 그늘진곳을 부지런히 찾아다닙니다.
여기는 스포츠센터앞 광경인데요.
음식문화축제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실감이 납니다.
무료체험하기 위해서는 쿠폰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
뜨아~이렇게 긴 행렬이....
하지만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암요. 기다리고 말고요. ㅎㅎㅎ
긴 기다림끝에
쿠폰을 받아들고 메주 만들기 체험을 합니다.
콩을 절구에 빻습니다.
콩콩 찧은 메주를 짚신으로 예쁘게 엮어주지요.
전통체험 놀이로 다식만들기를 합니다.
어렸을때는 명절이면 으레껏 만들었는데,
지금은 사라져가는 음식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는 바리스타 도전~~
커피콩 볶는것부터 시작합니다.
바리스타는 제법 고학년들이 모여있네요.
태국 똠양꿍
필리핀 마하 블랑카
중국 꿍빠우쩌딩
일본 도라야끼
베트남 분팃시오
오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양한 음식을 선보여 주셨어요.
대형마트에 가면 시식코너를 먼저 찾게 되는데요.
오산의 맛집(족발, 오리, 막창, 탕수육, 닭강정등)이 총출동하여
시식코너를 마련해 주셨어요.
어딜가나 기다려야 했지만,
기다리다 먹으니 더 맛나더라구요.ㅎㅎㅎ
배가 어느정도 든든해지자, 종합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손에는 먹을거리가 양손 가득입니다.
보는 제가 왜이리 행복한지요!!!
저희야 먹으랴 구경하랴 즐기느라 바쁜데
보이지 않는곳에서 이렇게 묵묵히
수고해주는 분들이 계시다는걸 깜박 잊고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종합운동장 한쪽에는 나눔장터로 인산인해고,
운동장안에는 본격적인 동별 대항전이 펼쳐집니다.
출발드림팀 스타일의
몸권투, 깃발뽑기, 장애물 달리기등
4시가 넘은시간인데도,
오산시민의날 행사는 뜨겁게 달아올라 식을줄을 모릅니다.
햇볕도 뜨거웠지만
각 동의 응원전은 더 뜨거웠습니다
후끈후끈~
이 열기를 모아 모아서 이번주말(9.19~21)에 개최되는
2014 독산성문화제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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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산 등산로가 새단장 했네요^^
낮에는 여름
밤에는 가을
하루에 두계절이 들어있는 요즈음입니다.
외출시 얇은 외투를 꼭 들고다녀야 한다는 수고스러움이 있지만,
어쨌거나~~
저는 가을을 너무너무 사랑한답니다.
여계산은 다른산처럼 해발 1000미터이상
고도 높이를 자랑하지는 못하지만
세교신도시를 가로질러 고인돌공원과 세마역,
궐동과도 서로 연결되어 있어
얘기 나누며 정답게 걸어갈 수 있는 아기자기함이 있습니다.
한달전만 왔을때도 평범한 산책길이었습니다만
멍석이 레드카펫처럼 되어있어
등산로 옆에 있는 나무와 산새들이 관객이라도 되는양
한걸음 한걸음 내딛습니다.
미끄럼방지도 되고 옆에 말뚝을 박아놓으니
한결 듬직해 보입니다.
오시는 분들에게 여쭤보니,
2주전쯤 비가 한참올때 공사중이었다고 하시더군요.
산에 오르다보면 상수리 나무와 밤나무가 많아서
운좋으면 청설모가 가끔 인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 이때다하고 얼른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만
청솔모는 사진찍는건 싫다며
뒤도 안돌아보고 나무위로 사라져 버립니다.
작년에는 밝은갈색으로 반짝반짝 빛났는데,
시간이 흐르니 빛이 많이 바랬네요.
여계산 위쪽에는 금암리 일대와 궐동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산에 오른 사람이 모여서 싸온 간식도 먹고,
물도 마시며 몸을 풀어줍니다.
산불 감시초소를 지나면 운동기구가 나란히 있고
누가 갖다놓은건지는 알수 없으나
방수처리에 재활용을 너무 잘해놓은 시계가 있습니다.
거추장스러워 시계와 핸드폰을 가끔 놓고 올때가 있는데,
작은것에도 신경써주시는 따뜻함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곳은 장군바위
여계산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곳에 오면 사진찍고, 잠시 쉬어가는 쉼터입니다.
오른쪽에는 지곳동이 훤히 보입니다.
알알이 차있는 밤송이
가을햇살을 받아 한참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밤송이가 벌어지려면 한주는 더 기다려야 겠네요.
그때까지 먹고 싶어도 꾹~참아야 겠습니다. ㅎㅎㅎ
지금이 한참 알밤이 떨어질때라,
떨어진 알밤 없나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거리는데,
행여나 하나라도 발견하면,
야호를 외치며 껍질을 까서 입속에 쏙 넣습니다.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아이는 영화를 보며 "상상"한다.
노인은 영화를 보며 "회상"한다.
회상할 게 상상할 것보다 많아지는 나이부터
네모난 스크린이 네모난 거울로 변해간다.
===김세윤 영화 에세이스트===
초가을 햇살과 바람이 베란다를 통해
스미듯 집안으로 들어오는 요즘.
혼자이어도 좋고,
함께라면 더더욱 좋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아도 좋고,
가까운 공원을 걸어도 좋습니다.
가을산행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신발끈 동여매고 산행길에 나서자구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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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꿈두레도서관은 낭만적이다
모처럼의 휴식이라 물향기 수목원으로 산책을 가려고
며칠 전부터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밤부터 내린 비가 아침까지 이어지면서,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산받쳐들고 빗소리 듣는 것도 퍽 낭만적이긴한데,
바지가 젖는 건 불편해서 말이지요~~ ^^;;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은데...
어쩌나 고민을 하다가
꿈두레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했습니다.
빗물을 머금은 초록잎들과
적당히 선선하고 맑아진 공기를 뒤로한 채
열람실로 올라가긴 너무 아까운거에요.
그래서 믹스커피 한 잔 타서
1층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어요.
맞은 편으로 보이는 풍광을 눈에 담으며
비오는 날의 낭만을 한껏 느꼈습니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사진에 다 담아낼 수 없는 게 참 애석합니다.
비가 오는 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울감을 느낍니다.
비가 오면 일조량이 감소하는데
그것때문에 신체 내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고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는 감소하는데
멜라토닌 분비가 증가하면
통증을 느끼는 감각이 살아나지만,
기분은 가라앉는다고 해요.
세로토닌은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식욕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는데요.
그래서 비 오는 날 막 먹고 싶고 우울해지고 그런가봐요~~
집에 있으면 한없이 늘어지고
기분은 우울해지고 게을러지기 쉬운데
차라리 밖으로 나와서 활동을 하면
몸과 마음이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안구정화도 했겠다~ 커피도 한 잔 했겠다~
열람실로 책을 읽으러 갔습니다.
빗물이 묻어있는 창가에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니
그저 행복하기만 합니다.
"빗방울 떨어지는 그 거리에 서서 그대 숨소리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
마음 속엔 비오는 날의 수채화 노래가 들리고
눈은 책과 창을 번갈아 왔다갔다 했어요... ^^;;
공복과 건강에 대한 책을 읽었어요.
식욕이 없으면 아침은 먹지 말라는 책의 내용을 읽는데,
왜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나는건지...
조용한 도서관에서 저의 꼬르륵 소리는
유난스레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민망함이란!
그래도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와야하니까
아쉬운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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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부는 밤. 모두가 즐거운 야시장
9월 첫날.
시끌벅쩍한 소리에 베란다 뒷 창문으로 나가보니
옆 아파트 단지에 빛이 가득하더라구요.
이어서 들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바로 야시장이었습니다.
역시나 야시장의 꽃 먹거리.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웃들과 정겨운 한상 차려놓고 정겨운 이야기가 한창입니다.
중앙 광장에서는 엿장수의 흥겨운
하지만 무서운 불쇼가 한창입니다.
맨살에 불 방망이를 가져다 대는 쇼에
입이 떠억 벌어졌답니다.
길 양쪽으로는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축제의 장소에 빠질수 없는 게임.
악세사리 부터 생필품까지 없는게 없는 좌판.
집에 하나 모셔다 놓고 싶은
예쁜 단지들도 한자리 차지했답니다.
쉴새없이 아이들을 태우는 바이킹.
무섭다고 소리지르면서도 또 타게되는게 놀이기구의 매력이죠.
극장에서나 체험할수 있는 4D 체험관이
떡하니 길 한복판에 있더라구요.
작지만 제대로 느낄수 있겠죠??
불뿜는 두마리 공룡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꼬마손님.
아마도 집에 갈때쯤에는
공룡한마리 손에 들고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즐거운 야시장에서 신랑과 함께 즐거운 저녁나들이 하고 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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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장군묘 방문기 | 한산의 무너짐 그리고 원균의 사라짐
이번 여름 개봉한 영화 <명량>이 누적관객 1700만을 돌파한 가운데,
영화에 등장한 인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관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멋진 리더의 대명사 이순신장군일테고,
기타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 또한 높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이순신의 아들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이 "권율"이네요.^^
여행을 다녀올 때,
경부고속도로가 막히면 송탄IC로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진위방면으로 올라오다보면, 이정표에 원균장군묘가 있더라고요.
예전부터 한 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다가, 지난 주말에야 다녀왔어요.
영화 <명량>을 보고 감상문까지 쓴 아들을 위해서랄까요??ㅋㅋ
오산에서 무척 가까운데요.
시청으로부터 13km 떨어져있으니 굉장히 가깝지요?
여러분은 "원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어떤가요?
혹시 저처럼 비열하고 권모술수에 능하며
리더답지 못한 얼굴이 떠오르시지는 않는지 모르겠어요.
어릴 때 읽은 위인전이나 만화 등에서 이순신은 영웅이며,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한 "나쁜 놈"으로 본 것 때문일까요?
하지만, 이번에 이 장소를 방문한 후에 원균장군에 대한 자료를 모으던 중,
원균에 대한 해석도 다양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순신을 모략해서 어려움에 빠트리고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인격이 덜 된 "위인"이라는 평과
(통제사 부임 이전의 행적을 보면) 명령을 잘 따르는 장군으로
괜찮았던 점도 있다는 평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원균은 공보다는 과가 너무 크지요.
임진왜란, 정유재란 중 조선수군이 유일한 패전을 한 것이 바로
원균이 이끈 칠천량해전이었고,
140 여 척의 배를 잃어 조선 수군이 붕괴되다시피 되었습니다.
그 덕에 감옥에 이순신이 백의종군하게 되었으니,
이순신의 입장에서 보면 하늘이 내린 기회인지도 모르겠어요.
<원균장군묘>
평택시 도일동 일대는 원주 원씨의 집성촌 중 하나랍니다.
원균장군도 이 곳에서 태어났고요.
현재까지도 원씨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원균장군묘로 갔습니다.
방문객을 위한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고, 옆에 건물도 하나 있습니다.
慕先齋라고 쓰여진 곳인데,
어떤 용도의 건물인지 안내가 없어서 궁금했는데요.
집에 온 후 검색해보니,
원주원씨의 제각으로 사용되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이 마주보는 곳에 내리저수지가 있고,
저수지 뒤로 장군묘가 보입니다.
선조 36년에 권율, 이순신과 함께 宣武 1등 공신에 추록되었으며
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원릉군
(崇錄大夫議政府左讚成兼判義禁府事原陵君)이 추증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님 말씀) 하는데,
어쩐지 입구에 홍살문이 있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았거든요.
사진의 오른쪽 홍살문을 통과하면 원균장군의 묘소로 들어갈 수 있고요.
왼쪽의 오르막길로 2-3분 정도 걸어가면 원균장군 사당이 있습니다.
원군장균묘
경기도 기념물 제57호
소재지: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산82
원균(1540-1597)장군의 자는 평중으로 조선 선조때의 무신이다.
무과를 급제한 후 선전관을 거쳐 조산만호 부령부사를 지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서
처음 옥포해전에서 이순신장군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왜선 30 여 척을 무찔렀다.
그 후 합포해전, 적진포해전 등 여러 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선조 30년(1597) 칠천량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선조 36년(1603)에 권율, 이순신과 함께 선무 1등 공신에 추록되었다.
선조가 이순신을 심히 견제하였으므로 이순신장군이 노량에서 죽지 않았다면
아마 선조의 손에 죽었을 것이란 말도 있던데,
원균은 무척 아꼈나봅니다.
묘소 아래를 보니 1605년 선주가 보낸 제문을 한글로 번역한 비문이 있거든요.
원균의 어떤 점이 선조를 "일편단심"으로 만들었을까요?
묘소 옆에 자리한 문인석...
세월이 얼마나 흐르고 흘렀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네요.
묘소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내리 저수지가 보이고
풍수지리를 잘 모르지만, 왠지 명당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사진에 담을 수는 없는 몸과 눈으로 직접 봐야 알 수 있는 거에요~~ ^^;;
위의 사진을 보면 왼쪽 아랫 부분으로 작은 비석과 작은 봉분이 보이시죠?
바로 "애마총"이라고 불리는 무덤인데요.
원균의 애마가 묻힌 무덤인데, 사연이 있답니다.
원균이 수군통제사가 되기 전에는
부산에 주둔해 있는 왜군을 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다가
막상 통제사가 되어 부임해보니 할 수가 없었지요.
적을 치라는 선조의 명을 어기고
이리저리 시간만 끌고 도망다니던 원균은
권율에의해 태장을 맞고난 후에 공격에 나섰습니다.
부산에서 후퇴해 거제도 옆 작은섬 칠천도를 지나던 중
일본수군에 야습을 당하게 되고,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도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고성과 통영 부근의 춘원포에서 왜군의 칼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그가 죽자 그의 애마가 주인의 곰방대와 신발을 물고,
여기까지 왔으나 지친 나머지 끝내 그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을 묻고 애마총으로 만들었고요.
원균의 시신은 찾을 수가 없어서
곰방대와 신발만으로 가묘를 쓴 것이라고 해요.
가묘라니... 충격이었네요.
저는 묘를 다녀온 후에야 이러한 사연을 알았거든요.
지나가는 길에 들른 준비없는 방문이어서 몰랐네요.
그렇다면
원균의 진짜 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정확하지는 않으나,
국도 77호선 변에 원균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진묘로 추정되는 봉분은 통영시 안정국가산업단지에서
고성군 거류면 당동리로 이어지는 국도 77호선 주변
야산 20여m 지점에 완만하게 오른 자갈 흙더미로 남아있다.
지금은 흔적만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주변마을 주민 사이에 '엉규이(원균의 지역적 발음으로 추정) 무덤'
또는 '목 없는 장군묘'로 불려 온 이 봉분은 각종 문헌과 구전을 토대로
원균의 묘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부산일보>2014.8.28. 김민진기자)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40828000143)
묘소를 내려와서 언덕을 넘어갑니다.
언덕 중간 즈음에 화장실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에 조그마한 안내소가 있었습니다.
사진 속의 옥색 문, 보이시죠?
안내소라는 아무런 "안내"가 없어서 몰랐는데,
어떤 곳인가 궁금해서 열어보니 이렇게... ^^;;
리플렛을 챙겨서 사당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언덕 정상에 제 키보다 큰 "깻잎나무"를 보며 놀랄 때,
사당이 딱 보였습니다.
사당의 원래 위치는 묘역 옆이었는데,
물이 나고 낡아서 이 위치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사당에서 내려가는 길>
지금에 이러러서는 칠천량해전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부르지만,
옛날에는 "한산의 무너짐" 혹은 "한산의 패전"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무너짐"이라는 단어가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조선의 수군이 배설이 도망치며 끌고간
단 12척만을 남기고 모두 전멸한 것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겁먹어 도망치다가 거의 몰살당한 것이기에...
이 패배가 너무나 충격이어서
이를 두고 더이상의 이름을 붙이기에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짐작을 해봅니다.
명장이든 패장이든 죽은 자는 말이 없으며
오로지 후세가 평가하는대로 받을 뿐이지요.
후세에 길이 남을 선인이 되든
후세에 길이 남을 악인이 되든
이름을 남기기에 급급해하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고 사랑하며 섬기며 살다보면
저절로 이름이 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