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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함께하는 인문학 “16세 소년 다산으로부터 배우라”<시민기자 박유진>;
작성자 OSTV 작성일 2017.03.28 조회수 1397


새학년 새학기를 맞이하여 오산시청 대회의실에서는 지난 3월 9일 김준혁 교수(한신대 정조교양대학)의 강연이 있었다.


민인식 오산시 초·중·고등학교 운영위원협의회장은 오산시 관내 학생들과 학부모들께 작은 보탬이 되고자 강연의 자리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역사를 알고, 정조와 다산의 지혜, 인간존중 정신을 통해 부모와 우리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행복한 세상에 다가서길 바란다고 하였다. 


김준혁 교수는 "16세 소년 다산으로부터 배우라" 라는 주제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 국왕으로 등극하여 백성을 위한 새로운 정치를 한 정조, 창조적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산에 대해 강연을 열어갔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학부모님, 여러 교장 선생님들께 감사함을 전했다. "정조대왕에 대한 학문과 식견이 출중하신 대학 교수님을 모시고, 평생교육 도시에 걸맞는 내용으로 함께 해 주시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강연을 듣는 모든 분들이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인사말을 전했다.  



김준혁 교수는 먼저 한 사람의 힘이 있기까지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아버지와 장인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다산의 아버지는 남인 출신 명문가의 정재원이다. 다산의 아버님이 남인 최고의 명문가인데 당대 노론 사람의 아내로서 무관인 풍산 홍씨였다. 다산의 장인은 사도세자가 죽던 날 영조 옆에 있었다. 당시 선정관이었던 다산의 장인인 호위 무관은 사도세자를 옹호했던 한 학자의 머리를 잘라 오라는 어명을 듣게 된다. 그러나 머리가 아닌 상투의 머리카락을 잘라 영조에게 갖다 드린다.


다산의 장인은 "선비는 상투를 목숨처럼 생각한다. 상투를 자르는 것은 머리를 자르는 것과 같다"며 명을 따랐노라고 말한다.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장인의 용기, 다산 장인의 교육이 다산에게 심어졌다고 할 수 있다. 현명한 아버지와 장인의 지혜와 용기에 영향을 받은 다산은 창조적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꾸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갖게 된다.



요즘 '대신맨'이라는 것이 아이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기사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 편 남의 편으로 나눈 것이 문제이다. 당대에도 여러 당파로 나누어진 조선 사회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었던 이익 선생의 영향을 받은 다산은  20살에 성균관 시험에 합격하여 들어간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은 39세, 문과 합격 평균 나이가 41살인 조선시대에 다산이 어린 나이인 20세에 성균관 유생이 된다는 것은 놀라울 만한 지혜와 지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성균관 유생은 당대의 기라성 같은 천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산은 황해도 곡산에 수령으로 부임하게 된다. 전임 수령이 탐관오리로 백성들이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재정이 전혀 없는 마을을 살리기 위한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된다. 다산은 창조적 아이디어를 생각한다.


다산은 10월이 되어 마을 입구에서 떨어진 넓은 들판에 커다란 구덩이 20개를 파게한다. 바닥에 쌀겨를 깔고 기름 바른 종이를 올리고 물을 붓는다. 날이 추워지면서 물이 얼었다. 똑같은 방법으로 20개의 구덩이에 얼음을 만들게 된다. 이듬해 5월이 되어 더워진 날씨가 되자 사람들은 시원한 것을 찾게 된다. 다산은 그 얼음을 곡산부 양반과 상인에게 팔았고 턱없이 부족한 재정을 채웠다.


조선시대 여름의 얼음은 재정을 얻게 되는 창조적 아이디어였다. 김준혁 교수는 다산의 일화를 들어가며 우리의 아이들에게 상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함을 피력하였다. 



어떤 일에서 있어서 영역 전체를 이해하고 보는 것, 다산은 그렇게 하였다. 정조가 성균관 유생과 강독하자고 했을 때 다산은 전체를 다 준비하였다. 한 부분만 이해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이러한 다산의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



다산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산이 공부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백성을 위해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낮은 자리에 있다보니 백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좋은 생각들이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한 다산은 공부를 하고자 하였다.


다산이 생각한 올바른 출세는 자신 일신의 사리사욕이 아니라 자기의 좋은 생각들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실현하기 위해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다산은 뛰어난 학문과 생각을 올바른 곳에 쓰기를 원했던 사람이었다.


나를 위한 이기주의가 아니라 공적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정조 리더십의 핵심은 이런 것이라 하겠다. 나의 이익과 더불어 공동의 이익이었다. 이날의 강연은 참석한 여러 학부모들에게 도전이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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