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시민e기자

홈으로 뉴스&이슈 시민e기자
시민 e기자글보기, 각항목은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첨부파일, 내용으로 구분됨
오산에는 몇개의 고인돌이 있을까요?<시민기자 오병곤>;
작성자 OSTV 작성일 2016.01.26 조회수 2597

고인돌은 큰돌을 받치고 있는 '괸돌' 또는 '고임돌'에서 유래된 명칭입니다.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불리며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입니다.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약 3만여 기의 고인돌이 주로 분포해 있는 지역은 고창, 화순, 강화입니다. 이 지역의 고인돌 유적은 지난 2000년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고인돌 중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셈입니다.


▶ 고인돌공원의 여름풍경 (할아버지 바위옆에 300년 은행나무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약 700여기의 고인돌 중에 오산에는 모두 11기의 고인돌이 있습니다. ‘오산금암리지석묘군’(烏山錦岩里支石墓群)의 명칭으로 경기도 기념물 112호로 지정된 9기의 고인돌은 고인돌공원(오산시 금암동)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고인돌 공원에 있는 제11호 추정 고인돌(500cmx370cmx125cm)과 움집


나머지 2기는 ‘오산외삼미동고인돌’(烏山外三美洞고인돌)인데 북오산 IC근처(오산시 외삼미동)에 있으며 역시 경기도 기념물 211호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산외삼미동고인돌의 경우 1기는 고인돌의 형태가 잘 드러나지만 나머지 1기는 고인돌의 덮개돌로 보이는 넓적한 돌이 남아있어서 고인돌로 추정할 뿐입니다.

▶ 경기도 기념물 211호 오산외삼미동고인돌 전경


고인돌을 분류하는 방법은 학자마다 차이가 납니다. 오산외삼미동고인돌 안내판은 김원룡(1974년)의 분류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1. 탁자식(북방식) 고인돌: 판판한 굄돌을 세워서 지표위에 네모꼴의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 모양의 고인돌입니다.


▶ 탁자식 고인돌의 모습을 보여주는 오산외삼미동고인돌


2. 바둑판식(남방식) 고인돌: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은 고인돌입니다.


▶ 바둑판식 고인돌의 모습을 보여주는 제7호 고인돌(세교7단지옆 금바위공원)


3. 개석식(남방식) 고인돌: 지표에 커다란 덮개돌만 드러나 있는 고인돌이며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 개석식(남방식) 고인돌의 모습을 보여주는 금산천내리고인돌(출처:문화재청)


금암동 고인돌공원 주변의 지석묘는 바둑판식 고인돌의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덮개돌은 땅 위에 드러나 있지만 하부구조는 흙속에 묻혀 있어 자세하게 알 수 없습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덮개돌의 길이가 6m 정도입니다. 덮개돌의 윗면에 수직으로 파인 알구멍(性穴)이 있는 2호 고인돌은 구멍의 파인 모양으로 보아 쇠붙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알구멍은 풍년을 빌거나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오산외삼미동고인돌은 강화고인돌과 같은 탁자식입니다.


▶자연암석에서 인위적으로 돌을 떼어낸 흔적이 보인다(제6호 고인돌 앞)


고인돌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연암석을 이용하거나 큰 바위에서 돌을 떼어냅니다. 돌을 떼어낼 때는 먼저 바위틈에 나무 쐐기를 박은 후 물을 부어 나무를 불립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팽창하면서 돌이 쪼개집니다.
2. 떼어낸 돌을 운반할 때는 큰 돌 밑에 나무를 넣고 굴리면서 지렛대와 밧줄을 이용하여 운반합니다. 겨울에는 눈이나 미끄러운 얼음을 이용하기도 하고 강이나 바다에 뗏목을 띄워 옮기기도 했습니다.
3. 구덩이를 파고 굄돌 두세 개를 튼튼하게 세웁니다. 그 주변에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듭니다. 그 위로 덮개돌을 끌어 올린 후 흙을 파내면 고인돌이 완성됩니다.


▶고인돌의 제작과정(출처:두산백과)


고인돌은 왜 사라지게 되었을까요?


고인돌이 어떤 이유로 소멸되었는지 정설은 없으나 몇 가지 가능성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우선 고인돌이 소멸하기 시작한 시기의 중요한 사회적 변화로 강력한 지도자의 등장을 들 수 있는데, 전대(前代)의 소규모 부족을 다스렸던 족장이 아닌 대규모 집단의 수장이 등장함으로써 계급사회는 더욱 치밀해져 갔습니다.

이 시기에 돌무지 나무널 무덤이 등장하면서 고인돌이 점차 사라졌다는 추정입니다. 또 다른 가설은 청동기 시대를 지나 철기가 농기구로 이용되면서 생산량이 늘어나고 농경지가 확장되면서 필요 없는 부분에서의 노동력을 절감하기 위해 고인돌 무덤이 점차 사라졌다고 합니다.


▶논바닥에 있던 제3호 고인돌의 과거(출처: 문화재청)와 현재


아득한 옛날부터 선조들이 대를 이어 살았던 ‘오산금암리지석묘군’(烏山錦岩里支石墓群)의 주변은 신도시로 개발되어 더 이상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오산시에서는 이곳에 고인돌공원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역사를 체험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오산의 대표적인 축제인 독산성문화제가 이곳에서 개최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무덤인 고인돌 곁에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고인돌 공원을 거닐면서 살아온 날을 반추(反芻)하고, 살아갈 날을 설계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고인돌사랑회(
www.igoindol.net)를 방문하면 고인돌에 관한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첨부
    조회된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이전글, 다음글, 각 항목은 이전글, 다음글 제목을 보여줍니다.
다음글 알아두면 좋은 달라지는 각 분야별 제도 안내<시민기자 김연주>;
이전글 어린이집 운영 투명성 높인다, 오산시 부모 모니터링단 모집<시민기자 김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