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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죽미령전투에서 희생된 스미스부대 전몰장병을 추모하며 <시민기자 박화규>;
작성자 OSTV 작성일 2016.07.12 조회수 1635

-함께 기억해온 66년 “죽미령전투-


오산시와 보훈처가 공동 주관한 유엔군 오산 죽미령 전투 66주년 추모행사가 7월 5일 격전지에 세워진 “유엔군 초전 기념관”(오산시 경기대로 742 관장 석경석) 추모비 앞에서 진행 됐다.


이 자리에는 당시의 참전 용사가 멀리 미국 본토에서 3명이 찾아 왔고 한미 양국 군 관계자들과 내빈 등 400 여명이 참석했다.


곽상욱 오산 시장은 기념사를 통해 우리가 오늘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호국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 했고,특히 국경을 초월하여 피를 흘리신 유엔군 장병들을 대한민국과 국민 모두는 영원히 기억하고 감사한다고“말했다.
북한군의 불법남침이 감행된 1950년 6월 25일 이후 우리 군은 남으로 후퇴를 시작했다.


전쟁 발발 후 10일 후에 일본에 주둔하던 유엔군 스미스 보병 부대가 유엔기를 앞세우고 부산경유 7월 5일 새벽 3시에 오산의 죽미령에 도착하여 남하하는 북괴군과 전투를 시작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와 포병부대는 진지를 구축하고 경계를 하던 중 아침 7시경 일 번 국도를 통해 남하하는 북한군 전차 모습을 발견하고 8시16분 포문을 열었다. 유엔이 창설된 후 유엔군의 첫 전투가 한국의 오산 죽미령에서 시작됐다.


오전 10시경에는 10km에 달하는 북한군의 보병 행렬과 T-34 소련제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에게 스미스부대는 박격포와 기관총을 쏟아대며 공격했지만 병력의 열세로 방어선이 붕괴하기 시작했으며 탄약과 병력이 소진된 스미스 부대는 2시 30분 퇴각을 결심했다.

 




이 전투에서 스미스 부대원 540명 중 181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고 북한군도 5,000명의 병력 중 3대의 탱크가 파괴되고 127명이 전사 하거나 실종됐다.

6시간 15분 동안의 짧은 전투는 비록 적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확연히 차이 나는 병력 대결에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스미스 부대원들의 희생은 유엔 역사에 기록 됐다.


이 전투로 인하여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고, 더 많은 유엔가입국이 한국전에 참전하는 발판이 되었다.


당시 통역 장교로 전투에 참여했던 25세의 윤승국 대위는 소장으로 예편하여 90세가 넘은 나이에 휠체어에 의존하여 행사에 참석하여 눈길을 끌었다.


한편, 오산시는 유엔군의 첫 전투인 죽미령 전투를 기억하기 위하여 죽미령 일원에 2018년까지 12만㎡에 스미스 부대 기념공원과 평화공원을 조성해 전쟁과 안보를 테마로 한 역사교육 지구로 변모시켜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한편, 전후 세대에게 오산 죽미령전투의 역사적 가치와 자유와 평화에 대한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들 계획이라고 발표 했다.

유엔군 첫 전투인 죽미령 전몰장병 추모식은 매년 이 자리에서 7월 5일경 실시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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